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래도 어릴 때는 사탕 사 먹으라고 사람들이 가끔 돈을 주었다.
그러면 난 어김없이 만홧가게로 달려갔다.
만홧가게에서 허영만 박봉성씨의 작품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만화에 심취하고 있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느닷없이 뒷덜미를 잡아채는 격한 손길을 경험하곤 했다.
어머니의 손이었다.
밥때도 놓치고 만화에 열중하는 아들이 속상하셨는지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팼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한국 문학 전집에 빠져들기까지 계속되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심심하여 읽은 것이 이광수의 ‘무정’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만화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로 문학 전집을 독파하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직 책에만 빠져 살았다.
경복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은 개가식이어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읽을 수가 있었다.
한창 대입 본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 개가식 도서관은 늘 텅 비어 있었다.
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는 학교 도서관은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그 텅 빈 도서관을 뜨거운 열정으로 채웠다.
그때 내 목표가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읽는 것이었다.
물론 이룰 수 없었지만...
대학 다닐 때 용돈을 처음 받았다.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판매하는 500원짜리 점심 사 먹으라 준 돈이었다.
나는 점심 대신 그 돈의 대부분을 응암동 헌책방 거리에서 사용하였다.
비록 배는 고팠지만 나의 마음은 늘 부자였다.
여름날이면 교보문고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한 권을 통째로 읽기도 했다.
요즘 책값이 많이 올랐다.
그래도 난 책을 통하여 세계 명문 대학교수들의 강의를 듣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힘들고 괴로울 때 책을 펼치면 난 어느새 중세 시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맛보기도 하면서 울적한 기분을 풀어낸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통하여 얻는 무한한 상상력, 영감 등을 생각하면 오늘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독서야말로 나에게는 보물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