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https://www.youtube.com/watch?v=1Br9mRylAaU&t=78s
사도 바울은 한때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자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율법의 지식에는 흠이 없이 완벽하고, 성경을 배운 고상한 종교적 인물임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랑을 한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는 이스라엘의 족속임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민족성입니다.
어떤 분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임을 자랑합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습니다.
맹세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뜻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는 뜻입니다.
민족성을 자랑하는 것이 지나치면 결국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일본인은 자기 민족이 최고라고 하고, 미국은 미국이 최고라고 하고, 한국은 한국이 최고라고 합니다.
바울의 민족적 자랑은 좀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를 자랑했습니다.
자기 가문에 대한 자랑입니다.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아!!!”
집안이 훌륭하면 좋습니다.
그는 민족성을 자랑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개나 소나 다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그중에서도 베냐민 지파임을 자랑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다르다는 뜻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도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자기 집안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는 팔일만에 할례 받은 자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관습을 잘 지켜왔다고 자랑합니다.
종교적 행위를 자랑한 것이지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주일 성수하고, 주일만 성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예배에 빠짐이 없음을 자랑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기도생활에 열심인지를 자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기도에는 뒤쳐지는 법이 없다고 자랑합니다.
어떤 분은 헌금을 자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지만, 내가 헌금을 얼마나 하는데 하는 자부심을 가진 것입니다.
종교행위에 자랑할 것은 참 많습니다.
교회 봉사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종교적인 인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지식에 흠이 없고 완벽하다고 자랑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끔 기독교인으로 하지 못할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부끄러울 때가 많은 데 바울은 종교적이며 도덕적이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한지 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열심히 배워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했습니다.
한국교회에 성경 공부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제자훈련, 소그룹 성경공부, 성경 통독반, 리더 훈련, 코칭 등.
그런 훈련을 다 마친 분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모든 자랑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건 세상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자랑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지식과 권세와 돈과 건강과 미모와 자식을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랑이란 측면에서 똑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안 이후 지금까지 자기가 자랑하던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십자가 말고 다른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기독교인 아니면서도 자기가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세상을 자랑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십자가를 자랑함은 십자가가 세상을 나에게 못밖았기 때문이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깨달은 이후 세상에 대한 모든 욕심이 헛된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을 추구하는 것의 결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세상을 줄 테니 무릎 꿇으라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듣기 좋은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선전해도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인권, 정의, 경제, 도덕, 평화, 사랑, 존중,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이 이야기하는 좋은 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하나님 대신 거기 인간을 앉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존중입니다.
저도 인간을 존중합니다. 인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외하면 그것은 곧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온갖 간교한 꾐과 유혹 앞에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