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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2. 2015

출판 유통이 없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보다 78년이나 앞서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로 책을 출판하였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 자랑할만한 업적이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다. 

더는 자랑할 것이 없다.

특별히 책을 유통하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 낙후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금속활자를 만들기만 했지 일반 백성이 그 혜택을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 보다 더 어려웠다. 

인쇄된 책은 매우 제한된 양이어서 왕실에 납품하고 난 후, 권문세족이 아니면 그 책을 얻을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출판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책을 베껴쓰는 방법 이외에 별달리 책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서양은 구텐베르크 이후 50여 년 동안에 4만 종 가까운 책이 발간되고, 인쇄소가 250여 개까지 늘어났다. 

처음 출판한 책은 집 한 채 값만큼 비쌌지만, 점점 저렴한 가격의 책들이 등장하면서 문예부흥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큰 조력자 역할을 감당했다. 


반면에 조선은 그 명운이 다하기까지 출판 유통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열하일기를 써서 유명한 박지원을 비롯하여 홍대용, 이덕무 등이 청국을 방문하고서 깜짝 놀랐다. 

18세기 북경의 서점 거리는 한마디로 신세계였다. 

어마어마한 책들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서 박제가는 그의 책 ‘북학의'에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가 서사(서점) 한 군데를 들어간 적이 있다. 

서사의 주인이 매매 문서를 뒤적이며 피곤에 지쳐 있으나 잠시도 쉴 틈이 없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쾌(책 판매상)는 책 한 질을 옆구리에 끼고 사대부 집을 두루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 여러 달 동안 팔지를 못한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중국이 문명의 숲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 강명관 지음 / 푸른 역사 / 242쪽) 


기껏 과거를 응시하기 위한 주자학에 관련된 서적만 들여다 보고 세상의 학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살피지 않는 조선의 학풍을 한탄한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책을 한 권 출판하면서 출판 시장이 얼마나 열악하고 왜곡되어 있는지 보았다. 


어릴 적에는 동네 책방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응암동에는 중고책방도 여럿 있었다.

지금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서점이 모든 것을 싹 쓸어가 버리는 상황이다. 

자본의 논리 앞에 동네 서점은 다 죽어버렸다. 


대한민국의 문예부흥은 언제쯤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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