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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7. 2020

C.S. 루이스의 사랑



C.S. 루이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그는 비록 평신도였지만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변증 하는 데 탁월하였습니다. 그가 쓴 ‘순전한 기독교’는 세상의 모든 사상보다 기독교가 합리적임을 잘 설명한 책입니다.


물론 C.S. 루이스의 사상이 복음주의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많은 개념을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 탁월하였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변증가로서 루이스의 힘은 상상력에 호소하는 작가로서” 탁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칭의나 성화와 같은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기독교를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그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사랑’을 주제로 어떻게 성화의 측면을 설명하는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들어 ‘사랑’은 단순히 ‘자선’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여기에는 더 넓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을 뜻합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워서 익혀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을 기독교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그들을 좋아하거나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을 북돋워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인위적으로 애정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 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의 차이는, 세상 사람들한테는 애정이나 ‘좋아하는 마음’만 있고 그리스도인들한테는 ‘기독교적 사랑’만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게 되리라 상상조차 못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선과 악은 모두 복리로 증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매일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한없이 중요합니다. 오늘 아주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은 마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는 일과 같아서, 몇 달 뒤에 꿈도 못 꾸었던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인간들 사이의 기독교적인 사랑뿐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가만히 앉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경건한 감정만 느끼며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살 수 있다 해도, 감정은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든 인간을 향한 사랑이든, 기독교적인 사랑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곧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3MODkX8v7c&t=2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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