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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Aug 01. 2020

코로나로 격리 중인 아빠를 위한 위문공연

코로나가 만들어준 추억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항상 아빠를 그리워했다. 영상통화도 하고, 전화통화도 자주 하지만 휴대폰으로 말고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며 엉엉 울 때도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달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남편은 올해 유독 긴 출장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항공편이 끊겨버렸고 남편은 귀국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을 하더라도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해외 입국자는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자가격리를 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우리 가족 네 사람이 모두 함께 집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제 겨우 격일로 학교를 가기 시작한 아이가 다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나도 일을 할 수 없게 되니 집에서 격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남편 회사에 친한 동료가 타 지역에서 출장 중이라 남편은 그곳에서 2주간 격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항에서 격리할 집으로 도착한 남편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들과 나는 건물 밖에서 창문을 올려다보며 만났다.


“아빠!! 아빠 손잡고 싶어!”


눈물겨운 만남이었다. 몇 달만에 만났지만 손 조차 잡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만나는 영상통화보다 더 작게 보이더라도 진짜 목소리를 듣고, 진짜 얼굴을 보며 만나는 것이 더 좋았다. 영상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분위기와 에너지가 피부로 와 닿았다. 아이들은 날마다 아빠를 보러 가자고 했다.


며칠 뒤인 주말 오후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만나러 갔다. 남편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격리 생활이 너무 지루하다고 했다. 그러자 한창 비트박스에 빠진 큰 아이가 지루한 아빠를 위해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비트박스를 시작했고, 흥이 넘치는 작은아이는 비트에 맞춰 춤을 췄다. 격리하는 아빠를 위한 즉석 위문공연이었다.



지금은 무사히 격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코로나 때문에 못살겠다고 불평을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물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팬데믹 상황이 한평생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답답한 마스크도, 2주간의 자가격리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코로나가 만들어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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