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플마 Dec 31. 2021

아내는 더+더+더 맛있어진 라떼를 마신다

에피소드 1: (2017년 1월 7일 작성)


"억울해서 도저히 못 사겠네."

아내의 이 한마디 말이 시작이었다.


금일 아침 나의 미션은, 분당의 야탑역 2번 출구에서 엘지전자 베스트샵 쇼핑백을 들고 서성이는 남자를 접선하여 그 쇼핑백을 인수해오는 일이었다. 난 이 007 작전 같은 미션을 성공리에 잘 수행해냈는데, 이로인해 이 미션의 수혜자인 아내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오늘 같은 경우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가 집에서 커피를 라떼 타입으로 마시고자 할 때, 우리 집에는 별도의 우유 거품기가 없는 관계로 아내는 우유를 그냥 데워서 커피에 섞는 방식으로 라떼를 만든다. 따라서 우유 거품이 풍성한 라떼에 대한 아쉬움이 무척 컸다. 하지만 우유 거품기 마련이 쉽지 않은 일이라서, 맛있는 라떼에 대한 아쉬움은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우유 거품기를 하나 사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겠지만, 내가 볼 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였다. 왜 불가능했을까?


아내는 N사의 캡슐커피 머신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머신을 구입할 당시에 여러 가지 이유로 우유 거품기는 빼놓고 본체만 샀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거품기 세척이 무척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N사에서 신형 우유 거품기가 발매되었는데, 세척도 용이해지고 사용도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아내는 이 신형 거품기에 필이 꽂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거품기만 별도로 구매하려면, 본체와 함께 살 때보다 5만 원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아마도 커피 머신 구매자에게 거품기까지 끼워 팔려는 N사의 판매전략이 그런 모양이고, 이 판매전략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 5만 원이 아내의 거품기 마련 욕구의 발목을 잡았다. 거품기를 사고는 싶은데,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을뻔한 5만 원을 더 주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해외 직구를 알아보았다. 과연 해외 직구는 많이 저렴하여, 5만 원은 충분히 빠지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송비가 발목을 잡았다. 배송비는 무려 3만 원이나 되었고, 이 3만 원은 그냥 허공에 뿌려지는 돈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내는 이 해외 직구도 전혀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문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가 되었다. 아내는 신형 우유 거품기가 무척이나 갖고는 싶었지만, 억울하게 생각되는 비용을 추가 부담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내의 우유 거품기에 대한 소원은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였다.


하지만 난 이 어려운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였고, 오늘 하루 아내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생각해낸 것은 네이버 카페의 중고나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별의별 것들을 다 팔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내가 원하는 물건을 아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난 N사의 신형 우유 거품기를 중고나라 카페에 구매 물품으로 등록시켜 놓았다. 이렇게 등록을 시켜놓으면, 누군가가 이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순간 내게 알람으로 알려준다. 이것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제품이면서도 내가 원하는 적절한 가격에 판매를 하겠다는 게시글이 며칠에 한번 꼴로 뜨곤 했다. 하지만 이 신형 우유 거품기는 인기가 좋아서인지 내가 게시글을 열어보면 그 사이에 이미 팔려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직 안 팔린 경우는 진짜 말 그대로 이미 사용된 중고 제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목요일에 운전 중에 갑자기 중고나라 알람이 울렸다. 난 무조건 운전을 멈추고 게시글을 살펴본 후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였다. 다행히도 내가 첫 번째 구매 시도자였고, 판매자는 분당에서의 직거래를 원했고 다행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흥정은 쉽게 타결되어 금일 아침 접선하기로 했던 것이다.


적절한 가격에 물건을 잘 입수하여 아내에게 건네주니 아내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아내의 라떼는  우유 거품기로 더 맛있어지고 가성비 만족도로 더더 맛있어지고 남편의 애정으로 더더더 맛있어진 라떼가 되었다. 몇만 원만 더 투자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그 몇만 원이 아까워서, 아니 아까워서가 아니라 억울해서 도저히 살 수 없었던 물건을 구해다 주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돈만으로는 구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피소드 2: (2016년 8월3일)


2016년 7월 어느날 이었다. 신문을 보던 아내가 뭔가 아쉬운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좋겠어.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무슨 기사를 보고 있나 봤더니,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햄릿 공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특별 기획된 연극에는 역대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연극인들이 출연하는데,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등의 연극계 거장들이 한 무대에 서고 있었다. 그러니 이러한 연극 무대의 희소성만으로도 관람의 값어치가 컸을 것이고, 따라서 순식간에 전회 매진이 되어 이제는 표를 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내는 이 연극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음을 몹시 아쉬워하며  '우리 인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연극'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 날 이후 난 그 연극표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에 대해서 고심하기 시작했다. '우리 인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연극'을 아내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이는 평생의 귀한 추억거리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표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터넷을 뒤지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크게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 정성이 통해서 였을까, 나는 드디어 네이버의 '중고나라'라는 까페에서 이 연극표를 판매하겠다는 내용을 찾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관람할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고 또다른 판매자가 나타나기만을 며칠 동안 끈질기게 기다렸고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의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표를 구하기 위한 미션은 중계동 1번 전철역 입구에서 아리따운 마음씨의 아가씨를 접선하여 표를 인수해오는 일이었다. 이 미션 역시 성공리에 잘 수행했고, 그 덕분에 아내와 나는 오랫만에 오붓한 국립극장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연극표를 구하는 과정의 경험은 이후 '우유 거품기'를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미션들은 아내의 나에 대한 사랑을 더욱 크게 했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 미션들의 최대 수혜자는 아내가 아니라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내가 라떼 커피를 계속 마시는 한은 우유 거품기를 사용할 것이고 그러면서 예전의 그 추억들을 자연스레 상기할 것이다. 요즘도 아침에 브런치를 곁들인  커피를 마실 때면, 아내는 종종 내가 해준 일 중에 제일 잘 한 일이 우유 거품기였다고 말하며 웃음 짓곤 한다.


<홍플마의 또다른 재미있는 글>

목걸이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