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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Aug 11. 2022

의천도룡기 2019가 내 인생 드라마였다

중국 무협 드라마가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될 줄은 몰랐다. 단지 심심풀이용, 시간 때우기용으로만 생각했던 무협 드라마가 내게 이렇게 진한 감동의 여운을 남길 줄 몰랐다. 의천도룡기 2019에 대한 얘기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난 갑자기 아내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였다.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희한한 일이다. 첫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함께 살아온 동안 아내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졌던 순간순간들이 내 가슴에 물씬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런 사랑스러운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아내와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고 생활하는 자체가 너무도 큰 축복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자아도취적 행복감은 의천도룡기 2019가 내게  준 감동이다. 도대체 이 드라마의 어느  부분이 이런 감동을 주었을까?




난 근래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넷플릭스의 시리즈물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의천도룡기 2019를 보게 되었다. 의천도룡기는 이전에도 볼까 말까 여러번 망설였었 으나 회차가 50편이나 되었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더구나 내용은 유튜브와 영화를 통해 대략은 알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의천도룡기를 드라마로 보면 더 재미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한번 보기로 했다. 사실 내용은 뻔하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주인공 꼬마가 기연을 만나 절세 무공을 익히게 되고 그것으로 무림 세계를 평정하는 뻔한 스토리이다. 거기에 주인공을 흠모하는 몇몇 여자들이 등장하여 미묘한 러브라인을 구축하며 스토리를 끌어나간다.


역시 무협 드라마는 중독성이 강했다.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시청 중단을 할 수가 없었다. 꼭 다음 편을 보고 싶도록 매 편의 끝 장면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이틀은 밤을 새워가며 몰아치기로 보았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어느새 새벽녘이 되었고 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게 뭐라고 이런 폐인 같은 짓을 하다니. 나이가 들어서도 뻔하고 뻔한 무협지를 좋아하다니, 철이 덜 들은 것이 확실하구만.'

이 드라마의 근간을 이루는 스토리는 권선징악과 더불어 용서와 화해이며, 거기에 애틋한 러브 라인들이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추리극의 형태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무협 소설의 플롯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스토리 전개보다는 여자 주인공의 매력이었다. 이 드라마엔 두 명의 여주가 등장한다. 전형적인 청순가련형 여주와 자기 주관이 아주 뚜렷하면서도 귀엽게 통통 튀는 여주이다. 내가 매력을 느낀 여주는 어느 쪽이었을까? 보통의 남자들은 어느 쪽 여주를 더 좋아할까?


이 드라마의 남주는 장무기인데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여주들의 매력이다. 두 여주로는 축서단이 연기한 주지약과 진옥기가 연기한 조민이 등장한다. 어느 여주가 더 예쁘냐에 대한 평가를 한 블로그들을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주지약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다. 주지약은 드라마 내내 보통의 남자들 마음을 아리게 하며 홀릴 만큼 청순가련한 표정으로 나온다. 실제로  축서단의 미모가 역대급으로 빼어났기에 주지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주지약에 대해서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옥기의 조민에 대한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냥 '진옥기'나 '조민'이 아니라 '진옥기의 조민'이라는 것이다. 이연걸이 주연한 1993년도판 영화 의천도령기에는 장민이라는 예쁜 여배우가 조민 역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장민은 예쁘기는 하지만 약간은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내가 별 매력을 못느꼈던 기억이 있다. 반면에 진옥기의 조민은 예쁘면서도 귀엽고 또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내 옆에 있으면 그저 즐겁고 사랑스럽고 행복할 듯한 그런 매력이다.


진옥기의 조민이 보여주는 또 다른 매력은 자기 인생에 대한 주관과 자신감 그리고 결단력이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무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군주(왕의 딸)로서 누리고 있던 것들을 모두 과감하게 버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장무기와의 결혼이 마련되었을 때는 또 그것을 과감하게  집어던진다. 정략적으로 이용당하는 결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민은 장무기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냥 끌려다니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은 장무기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찾아오도록 만든다.


반면에 축서단의 주지약은 자신이 주도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삶을 산다. 장무기를 사랑하면서도 과감하게 그 사랑을 좇아가지 못한다. 문파의 규율과 사부의 지시에 계속 얽매인다. 더구나 사부가 장무기를 죽이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계속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다. 이렇게 애절하게 고뇌하는 주지약의 표정들은 남자들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좀 현명하지 못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그저 그런 여자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갈등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난 여자의 아름다움은 외모로부터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주지약을 보며 그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나만의 주관적인 미의 기준이다.


자, 여기까지가 나의 드라마 감상 후기이다. 그런데 이 후기에는 도대체 이 드라마의 어느 부분이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될 수 있었는지가 나와 있지 않다. 도대체 어느 내용이 그토록 감동적이었을까? 사실은 이 드라마 자체로부터 내가 받은 감동은 없다. 오히려 밤을 새워가며 봤다는 것이 허탈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결론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가 내게 중요한 인생 드라마가 된 것은 다른 부분에 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후 난 허탈한 가운데서도 뭔가 아쉬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아쉬움은 진옥기의 조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조민이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듯했다. 연인과 함께 있는 자체로 마냥 행복해하는 조민, 연인의 실수들을 놀려대며 웃음 짓는 조민, 연인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조민, 항상 당당하고 현명한 판단력으로 대세를 읽고 행동하는 조민. 그런 조민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난 갑자기 깨달았다. 내 옆에는 그런 진옥기의 조민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나 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벅찬 행복감에 휩싸였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내 눈에는 아내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예쁘다. 착하다. 현명하다.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다. 아니 이런저런 조건이나 품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내는 오직 나만을 사랑하며 내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유일한 취미는 나를 그리고 가족들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과일, 간식거리를 마련하려 애쓴다. 욕심내어 한 계단 더 올라가는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재의 수준에서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행복을 즐기며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내의 이런 모습들을 생각하다 보니 조민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더구나 진옥기의 조민은 드라마 속의 가상 인물이지 않은가? 난 현실에서 더 예쁘고 더 사랑스럽고 더 현명한 여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더구나 그 여인은 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살고 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


이 행복감은 온종일 나를 감싸며 들뜨게 만들었다.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는 아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 연애 시절 까페에 마주 앉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났다. 그동안 살면서 아내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던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던 이런 장면 장면들이 계속 떠 올랐다. 아무 생각없이 매일 저녁 기계적으로 나섰던 아내와의 산책 길이 오늘은 더 즐겁게 느껴졌다. 자그마한 내 실수들에 대해서 날 놀려대며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우연히 되살아난 아내에 대한 이런 사랑의 감정은 아마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듯하며, 나는 더욱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 듯하다. 이런 뜻밖의 선물을 준 의천도룡기 2019는 진정으로 나의 인생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2022년 8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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