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플마 Jun 23. 2022

코알라 아내

'엄마가 아직도 안 자고 있다. 엄마가 이상해졌다.' (Nowadays, she has become a changed person.)

방금 전 아들의 이 한마디에 본 글감이 떠올랐고, 난 옛 기억으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어린 시절에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만화, 만화영화 중에 '요괴 인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벰, 베로, 베라가 나오는 요괴 인간. 난 한동안 아내를 보면 그 요괴 인간의 한 장면이 떠올라 그것으로 아내를 놀리곤 했었다. 어느 마을에서는 밤 12시만 넘으면 모든 어른들이 이성을 잃은 사악한 요괴로 변하였다. 아내가 그랬었다. 아내는 밤 10시만 넘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굉장히 히스테리칼 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와 아들은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스러워졌었다. 때도 아들은 이 말을 했었다.

'엄마가 아직도 안 자고 있다. 엄마가 이상해졌다.' (Just now, she became a monster.)

아들이 한 두 개의 말은 똑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편의상 그 다름을 영어로 표현해봤다.




아내는 잠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거의 코알라 수준이었다. 일단 밤 10시 전에 무조건 잠이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일요일 같은 휴일에는 하루 종일도 잘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일요 축구 동호회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아내는 밥보다는 잠의 힘으로 사는가 보다. 그런데 저렇게 자는 것도 힘들 텐데?'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늦게까지 깨어있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그러면 마귀할멈 같은 히스테리가 발동하였다. 그랬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면서 생활 리듬이 바뀌었다. 이제는 밤 12시경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깨어 있을 때도 많다. 전혀 히스테릭하지 않으면서도. 금일도 그랬다. 본 글의 첫 문장은 그런 엄마를 보고, 아들이 한 말이었다. 내가 빙그레 웃은 이유는 진짜 불가사의할 정도로 잠이 많던 아내의 옛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아래의 글은 '아내의 잠자는 실력'에 대해서 내가 조금씩 알게 되어 가던 과정을 회상한 내용이다.




신혼초에 나는 출근을 새벽 5시 반쯤 해야 했다. 당시에 회사는 7-4제라 하여 7시 출근 4시 퇴근을 했었다. 따라서 아내는 그 새벽에 아침상도 챙기고 현관문 밖까지 나를 배웅해주기도 하였다. 신혼이었으므로 이런 것이 좋기는 했지만,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아내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미안하였다. 그래서 아침 식사는 회사에서 먹기로 하여, 새벽에 아내가 밥상까지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졌다. 하지만 내 출근 때문에 아내의 수면 리듬이 깨지는 것은 여전했다. 난 아내에게 굳이 배웅할 필요 없이 그냥 계속 자라고 했지만 아내는 일하러 나가는 남편한테 그럴 수는 없다고 하였고, 난 계속 미안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안쓰러움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정말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그 과정을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현관문 밖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오던 아내가 하루는 현관 안에서 인사만 한 후,

      '문 잠가도 되죠?'

한 후 딸깍 현관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이때는 아내가 내게 존댓말을 쓰던 시절이었다.)

좀 서운하기는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래, 뭐 필요 없이 문밖까지 나올 필요는 없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내가 안방 문까지만 나오더니,

      '여보, 현관문 좀 확실하게 잠가줘요. 잘 다녀오세요.'

하였다.

      '그래, 뭐 번거롭게 현관문을 잠그러 나올 필요 있겠어. 내가 잠그면 되는데.'

그러고 며칠 후, 아내는 아예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여보, 미안한데, 내가 너무 졸려서. 그냥 여기서 인사해도 되죠?'

하면서, 침대에 누운 채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 효율적으로 살자. 꼭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고 나서 또 며칠 후였다. 아내는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이불속에서 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세요.'

라고.


이 즈음 나는 안방에서 출근 준비를 했었다. 불을 훤하게 켜놓고, 드라이도 하면서 좀 시끄럽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인사를 하니,

      '그래, 어차피 효율적으로 살기로 했으니까, 내일부터는 거실에서 출근 준비를 해야겠다.'

라고 선심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부터는 모든 출근 준비를 거실에 미리 해두고, 새벽에는 당연히 안방 불은 켜지 않고 구두 인사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부터는 내가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대꾸 인사를 하였고, 대부분은 그냥 계속 자는 것이었다. 이제는 깨우는 것 자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안방을 빠져나와 거실에서 모든 준비를 한 후, 조용조용 출근을 하였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푹 잘 수 있으므로 잘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던 중 며칠 후였다. 미처 출근 준비를 못해놓고 잔 날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내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옷들을 챙기는데, 가만히 보니 아내는 내가 좀 시끄럽게 굴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드라이도 조심스럽게 시도해봤는데, 아내는 자던 자세 그대로 계속 곤하게 자는 것이었다.

아, 그랬다. 아내는 엄청난 잠보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 놓고 안방에서 편하게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내는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쿨쿨 잘 잘 수 있었으므로.


그런 아내에게 신혼 초 새벽 배웅이 얼마나 큰 정신력을 필요로 했던가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2022년 6월 22일 작성)


<홍플마의 또다른 재미있는 글>

목걸이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는 자기를 추앙하라 한다. 하지만 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