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볼품 없었다.
동네가 익숙해질수록 시간은 잘 갔다. 2019년 가을과 겨울은 시간이 유독 빠르게 흘렀다. 직장을 구했고, 해리도 형도 떠난 시간을 알아서 잘 보내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만큼 무언가 새로 해볼 시간도 많아졌다. 부엌이 좁았지만 요리를 시작했다. 볼품 없는 부엌이었다. 기껏해야 어깨 넓이만한 너비의 공간에 1구짜리 인덕션만 달랑 놓여있었다. 그 밑은 세탁기였고, 그 뒤는 신발장이었다. 인덕션 옆엔 내 팔길이보다 좁은 싱크대가 있었다. 싱크대는 몰라도 인덕션을 쓰려면 신발장에 서서 해야했다. 그 당시에도,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볼품 없는 부엌이었다. 가끔은 형이 그랬던 것처럼 그 볼품 없는 인덕션으로 도시락도 만들었다. 사실 도시락이란 말도 붙이기 민망한 밥과 찬이었다. 언제 샀는지도 모를 1인용 자취용 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을 양만 퍼담았다. 밥솥은 보온 기능도 엉망이어서, 먹고 남은 밥을 비닐에 담아 냉동해두지 않으면 보온 중임에도 물기가 다 말라버렸다. 그런 밥은 아껴두었다가 라면 끓여먹을 때나 꺼냈다. 반찬도 조촐했다. 메인 반찬이라고는 냉동 떡갈비가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본가에서 가져온 밑반찬을 담았다. 잘 해먹어봐야 엄마가 본가에서 얼려서 가져다준 불고기를 해동해 구워 먹는 수준이었다. 나보다 좀 더 부지런했던 형은 내가 집에 처음 들어온 날 그 공간과 그 재료들로 둘이 먹을 일식 스팸덮밥을 만들었다. 신기했다. 내 기준으로 일식 스팸덮밥은 그 집에게 과분한 음식이었다. 내가 그 집에서 혼자 지냈던 1년 반 동안, 볼품 없는 부엌에서 기어코 스팸덮밥을 만들어낸 형이 그런 면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홈플러스를 갈 때면 식품 코너를 구경하느라 1시간은 그냥 지나갔다. 1시간동안 돌아봐도 장바구니에 담아 나오는 건 냉동 떡갈비나 만두, 우유와 계란 정도였다. 장바구니도 없이 그냥 들고 가도 되는 날이 태반이었다. 어릴 때부터 살 게 없어도 식품 코너를 구경했던 습관이 계속 남아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사는 것도 별로 없이 시장 물가에만 빠삭해졌다. 가끔은 나도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싶었다. 그럴 땐 눈으로만 담은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머릿 속으로 만들어 먹었다. 사지도 않은 재료들로 만들 음식의 레시피를 검색해보는 게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내 눈길을 너무 잡아 끄는 재료가 있으면 가끔은 한 개씩 사기도 했다. 그래봐야 조미료 아니면 구워 먹을 캐나다산 삼겹살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조미료가 늘어나고 간단하지만 만들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늘어갔다. 볶음밥도 김치볶음밥만 먹다가 굴소스계란볶음밥을 하게 되었고, 그냥 구워먹기만 했던 떡갈비로는 우스터소스와 케찹으로 떡갈비양파볶음을 만들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늘어나니 집에 있는 시간도 따라 길어졌다. 하루는 해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엌의 식기를 모조리 꺼내서 필요한 재료를 가지런히 담고, 휴대용 버너를 꺼내 협탁에 놓은 뒤 휴대폰을 멀리 세워두고 촬영을 했다. 그렇게 부대찌개 쿡방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해리한테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찍었지만, 사실 그 볼품 없는 공간에서 부대찌개까지 끓여먹는 나 자신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 집에서는 형이든 나든 잘 살지 말기를 바랐다. 스팸 덮밥과 부대찌개는 그 집에서 끓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고급이었다. 형도 처음엔 2년은 살아야하는 그 집에서 스팸덮밥을 만들면서 그 집에서 악착같이 잘 살려고 했을 것 같았다. 잘 살려하지 말고 다른 곳을 구하면 더 나았을텐데. 그럼 나도 그 집에서 살 일이 없었을텐데. 형을 원망하던 마음이 어느새 나도 가끔은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양 조절을 실패한 부대찌개는 너무 맛있었고, 나는 4번의 끼니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부대찌개를 끓이고 나서도 사실 해먹는 음식들의 수준은 비슷했다. 뭘 해먹으려해도 원래 먹던 수준보다 더 번거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번거로움은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기 힘든 존재였다. 여전히 냉동 떡갈비나 계란후라이와 밑반찬이 주 식단이었다. 그렇지만 나아진 건 분명히 있었다. 막막함이 번거로움으로 변했다. 못할 것 같던게 하기 귀찮은 것이 되었다. 못하는 게 안하는 것으로 변했다. 독산동에 또 마음이 열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