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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Dec 26. 2023

삶과 죽음은 맞물려 돌아간다

서유럽_영국_런던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영국으로 출장을 간다고. 엄마에게 여행은 허투루 돈을 쓰는 일이다. 나랑 맞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나는 가야만 했다. 무기력과 허무함에 사로잡혀 죽은 시간. 느닷없는 소나기에 온몸이 젖어 못내 허탈한 웃음과 울음이 쏟아져 나오던 순간. 멀고 길게 떠나기로 결심했다.    

 

20살부터 시작한 나의 여행은 현실을 부정하는 여행들이었다.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고 싶은 갈망.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떠나는 도피. 32살의 여행은 달랐다. 도망가고 싶지도, 숨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잠식되어 가는 나를 찾고 싶은 여행이었다.     


왼쪽 찰스 디킨스 박물관/ 오른쪽 크라이스트 처치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루이스 캐럴.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영국 작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영국여행을 결심했고, 일주일 만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장 멀고, 길게 한국을 떠났다.    

 

처음 만난 런던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하고 친근해 신기했다. 런던을 방문한 목적인 좋아하는 작가들의 흔적들을 찾아 찰스디킨스 박물관, 크라이스트 처치 학교도 방문한 순간은 등짝이 간질간질했다. 지난 12일 동안 잉글랜드 여행을 마치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킹스크로스역으로 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매번 사소한 곳에서 나타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든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은 마치 서양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속에서 아직 인지되지 못하고, 충분히 아파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에든버러 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가 풍랑 속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신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신에게 물었다. 왜 하필 예수가 탄생하는 그때 내 아버지의 죽음을 주셨는지. 아버지를 잃은 상실은 나를 무기력하고 허무한 삶으로 이끌었다. 무너진 내 삶의 원인을 찾았다. 이성적으로 사람은 모두 죽으니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조금 빨리 찾아온 거라며 나 자신을 설득했다.     


내 감정의 아픔을 바라봐 주지 않았다. 그것이 결국 3년이 지나 기차 안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누군가는 태어나지만 누군가는 죽는다. 삶과 죽음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괜찮았을까.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표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똑같은 시간의 바퀴가 굴러간다. 여행 전과 다름없이 산다. 이전과 달라진 건 삶을 좀 더 끌어안으려고 노력하고 아픔을 바라봐주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오늘의 삶을 걸어간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죽어야지만 벗어날 수 있는 삶의 굴레 안에 나는 존재한다. 벗어날 수 없다면, 살아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들의 글은 남아있다. 나의 아버지는 죽었지만, 그때 그 나이로 늙지 않은 그와의 추억은 내 안에 남아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에 죽지 않고 존재한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수많은 삶의 역을 지나 도달한다. 인간은 매일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면서도 죽음에 대해 불안해한다.     


영국 여행은 삶과 죽음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임을 알려주었다. 모한다스 k. 간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삶은 죽음으로부터 태어난다. 보리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 씨앗이 죽어야 하듯이.” 역설적 삶이 나에게 다가온 순간. 다른 삶을 살아간다. 오늘도 삶과 죽음은 맞물려 돌아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3주정도 쉬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 이야기로 빠르게 복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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