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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May 28. 2024

서른아홉, 경단녀가 되었다

내가 나의 회사를 차려야 할까?

10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는 경단녀라니. 서른아홉, 나는 경단녀가 되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일을 하지 못했다. 노력하면 무엇이라도 되겠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버텨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원하던 결말이 적어도 이건 아니었는데 경력 단절이 6개월이 지나 장기 경력단절자가 되었다.    

  

브런치 스토리에 10년에 10개 직업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동안 경험한 직업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기는 힘들었고, 일이 힘들면 사람은 괜찮은데 반대로 사람이 좋으면 일이 별로였다.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둘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일까?     


경단녀가 되고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많이 넣었다. 그러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구직에 도움을 받고 싶어 지역에 있는 여성인력센터에 가서 상담사님을 만났고, 상당히 친절하셨다. 상담할 나의 이력서를 보시고 ‘열심히 사셨네요’라고 말해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쩌면 나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나조차도 봐주지 않았던 나의 노력에 잘 살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나의 성격상 가족 앞에서도 울지 않는데 눈물을 흘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받을 줄 몰랐다. 열심히 살았는데 경단녀라니 인생이 흔들릴 만큼 허무했다. 이제는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칭찬하고, 다시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성인력센터에 신청한 집단상담에서 40대 경단녀들을 만났다. 각자의 ‘인생 그래프’를 소개하는데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신 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그래프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기는 대부분 결혼과 육아 시기였으며 육아를 시작하면서 타인만을 위한 삶으로 자신을 무가치한 인간 같아 괴롭다고 말해주셨다.     


40대 경단녀들은 결혼 전에 화려한 경력을 가지셨지만, 그녀들이 단절된 경력을 이어서 일을 할 곳은 없었다. 열심히 일했던 과거의 경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통계에서는 40대 여성 직장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들은 대부분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니 회사에는 40대 남성만 남고, 여성들을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미혼이지만 경단녀가 되었다. 이력서를 계속 넣었지만, 핸드폰 벨은 울리지 않았다.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 문득 내가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고 싶은지 의문이 들었다. 원래 회사와 맞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멋대로 살았으면서 이제야 회사에 들어간다고?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서울강서캠퍼스 '출판창업과정 3기'


우연히 알게 된 한국 폴리텍대학에서 여성 재취업과정으로 ‘출판창업’ 과정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39년째 살면서 창업에는 한 번도 눈을 안 돌렸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짜로 가르쳐준다니 그거라도 배워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고, 덜컥 합격해서 어쩌다 1인 기업에 길로 들어섰다.


출판 창업 과정 수업을 수강이 1주일 지났다. 우려했던 것보다 재밌다. 디자인과 글을 모두 전공한 나에게 창업도 하나의 길이 될 것 같았다. 출판 창업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지금의 암흑 같은 상황을 돌파하고 싶었다.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면 내가 나의 평생직장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 애플도 처음에는 1인 기업이었을 텐데 그렇다고 엄청난 대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금 다른 결의 성공이다.     


창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입에 풀칠하는 정도에 수입이 생기면 좋겠다. 적당히 일하며 나 자신을 지키고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 만약에 창업하게 된다면 일하는 기쁨을 회복하고, 어디에서도 잘리지 않고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계속 일 할 수 있는 평생직장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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