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마흔까지만 고민할 거야

by 사월

"딸을 낳아야겠지? 엄마를 위해서는 딸이 있어야 하는데... 늦게 하나 더 낳을 수 있을까?"


남편은 아들 둘을 키우는 나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말은 아들 둘을 데리고 나가면 지하철에서도, 공원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늘 듣던 말이었다. 어찌나 아들 둘을 키우는 나를 걱정해 주는 분이 많은지 고마울 지경이다.

거기에 남편까지 가세했다. 나를 위해 딸을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정말 나를 걱정하는 게 맞아?


"우리에겐 아이 둘도 사치야. 경제적인 사치가 아니라 상황적인 사치. 당신과 내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당신이 너무 가정적이어서 큰 아이 둘을 책임지고 키워 준다면, 내가 셋째를 낳지. 주말에도 같이 놀러 다닐 수 있다면."


남편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오후 늦게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가족들이 일어날 때쯤 잠들었다가 정오쯤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결혼 후에도,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아침마다 내가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든 말든 남편은 고이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자고 있는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랴... 당신도 피곤하겠지... 그래도 지칠 때면 남편을 한 번 째려본 뒤 어린이집 가방 2개, 내 가방 하나를 어깨에 척 걸치고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우는 둘째를 안고서 어린이집까지 달릴 때도 많았다. 회사에 지각할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주말에는 아침부터 바쁜 남편이다.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 뒤 밤늦게 퇴근했다. 결국 아이들은 평일에도 주말에도 아빠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셋째를 낳으면 우리 아이들은 외출도 못 해. 나 혼자 둘은 감당하지만 셋은 감당 못 해. 지금이 편한 거야. 그래도... 딸을 낳으면 정말 예쁠 것 같긴 하다."


셋째가 딸이라는 보장도 없고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시댁과 친정은 장장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너무 멀고, 소소한 부탁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거리다. 직장을 다니느라 동네 엄마들과 친해지지도 못했다. 친한 동네 엄마가 있다고 해도 육아 품앗이를 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그치? "


"나중에 나이 들면 우리 둘이 서로 딸 역할을 하면 되지. 같이 미용실도 다니고, 쇼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면 되지."


2014년 2월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에게 절대 셋째는 없다고 땅땅땅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둘도 사치라고 단언했던 내가 4년 후 마흔을 한 달쯤 앞두고 폭탄선언을 했다.


“나 셋째를 갖고 싶어. 근데 마흔까지만 고민할 거야. 그니까 셋째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노력해 보자.”


이 말을 듣고 남편은 어리둥절해했다.


“우리 셋째를 안 갖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낳을 거야. 갑자기 셋째가 너무 갖고 싶어졌어. 셋째가 딸이면 넷째도 낳을 거야. 맑음이 푸름이처럼 둘이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 그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라 나에겐 갑자기 삶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갑작스럽게 너무나 빨리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내며 한 번뿐인 인생, 살아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 망설임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내 결심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머릿속은 나를 보며 빵긋빵긋 웃고 꼬물꼬물 움직이는 예쁜 아이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그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만 그려졌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정말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만이 가득했다.

잠 못 자서 푸석한 피부, 출산 후 쉬이 회복되지 않는 몸, 밤새 안 자고 우는 아이, 2시간마다 해야 하는 수유, 하루에도 몇 번씩 세척하고 소독해야 하는 젖병들, 한가득 나오는 빨랫감 등등에다 외출 한번 편하게 못 하고, 외식은 꿈도 못 꾸며 집안에만 갇혀 있는 상황 등등을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두 번이나 겪어봤으면서 말이다.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자유도, 나를 돌볼 시간도, 존엄이 지켜지는 상황도, 아이의 토로 얼룩진 티셔츠를 갈아입을 여유도 없는 나를 생각하지 못다. 경험자이면서 말이다.


거기다 이 결심은 잠깐의 고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20년을 책임져야 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다.

초록이를 너무나 기다렸기에.


Photo by Senjuti Kund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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