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를 다녀온 날 저녁, 이날은 남편이 쉬는 날이어서 우리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유일하게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야겠기에 저녁을 먹은 후 잠깐 식탁에 앉아 있어 달라고 했다.
산모 수첩을 꺼내 들고 그곳에 붙어 있는 초음파 사진 보여주며 얘기를 시작했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초록이라는 동생이 생겼어. 여기 보이지? 여기 까만 점 같이 보이는 게 초록이야. 오늘 아빠랑 산부인과에 다녀왔는데, 초록이가 엄마 배 속에서 잘 크고 있대. 9월이면 너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12살 맑음이와 10살 푸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네? 초록이요? 동생요?"
"응, 너희들의 동생, 초록이. 초록이가 엄마 배 속에서 10달 동안 쑥쑥 큰 뒤에 9월에 태어날 거야."
아이들은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
"이야~ 동생 생겼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계속 웃는다. 동생의 존재를 이렇게 반가워하고 좋아해 주다니 정말 고맙다. 남편이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 뒤 주의 사항을 알려 준다.
"엄마는 지금 아주 조심해야 돼. 깜짝 놀라서도 안 되고, 너무 피곤해서도 안 돼. 무거운 물건을 들어도 안 되고... 너희들이 엄마를 많이 도와줘야 할 거야. 어때? 초록이가 잘 클 수 있도록 엄마를 많이 도와줄 수 있겠어? "
"네!!!!!!"
아이들은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이다. 곧 태권도에 갈 시간인데, 가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올 것 같다.
"엄마,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요?"
"그럼, 기쁜 소식이니까 자랑해도 되지."
"이야~ 동생이 생겼다. 태권도에 자랑해야지."
"근데... 아직은 안정기가 아니어서 초록이가 엄마 배 속에 있기 힘들면 엄마를 떠날 수도 있어. 안정기가 될 때까지는 조심조심 말하고 다니자."
"네???? 언제쯤 안정기가 돼요? 초록이가 언제쯤 안 떠나요?"
"1달은 지나야 할 거야."
"엄마, 초록이 사라지면 안 돼요."
"응. 엄마가 편히 잘 지내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남편이 옆에서 거든다.
"너희들이 많이 도와줘야 돼."
"엄마 도와줄게요."
이날부터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를 챙기기 시작했다. 시장을 봐 오면 현관 앞까지 달려 나와서 내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 들었다. 조금 무겁다 싶으면 잔소리를 시작했다.
"엄마, 무거운 거 들면 안 되는데... 초록이 사라지면 어떡해요? 전화를 했어야죠."
힘들어서 누워 있으면 엄마 몸은 괜찮은지, 초록이는 잘 있는지 꼭 물어봐 주었다. 엄마와 같이 시장에 가는 일이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엄마가 자주 다니는 정육점, 과일집, 채소 가게 등도 하나씩 알게 됐다. 이런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부터는 아이들끼리 엄마의 단골집에 가서 시장을 봐 오기도 했다.
아직은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초록이의 존재를 알자마자 갑자기 형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큰 형이. 큰 형 같은 모습이 보일 때마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멋지다고 말해 주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갈 나이인데, 엄마가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Photo by Georgia de Lot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