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0시 출근 5시 퇴근

by 사월

근로 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 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임신 초반에 유산의 위험으로부터 임산부를 보호하고, 임신 후반 무거운 몸 때문에 거동이 힘든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해 2014년에 신설된 규정이다.


맑음이 푸름이를 임신했을 때는 이런 규정이 없어서 몸이 힘들 때마다 내 연가를 쪼개 쓰며 이 시기를 버텼던 것 같다. 이건 내 일이고 내 문제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이런 사고가 당연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임산부의 고통과 어려움은 개인이 해소해야 할 문제에서 사회가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할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임산부 근로 시간 단축제와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 등이 그 예인데,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긴 하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세상 좋아졌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며 과거를 소환하며 본인의 힘들었던 시기를 신파조로 풀어낼지도 모른다. 또는 비아냥거리며 이런 제도를 쓸 수 있는 좋은 회사(?)에 다니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규정이 있다고 해도 회사 내에 이런 제도를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우리 회사에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정착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육아 휴직도 2010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는 금지어로 통했다. 입밖에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법에는 분명히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다고 돼 있지만, 회사는 법과 다르게 움직였다.


같은 팀 내에서도 누군가가 육아 휴직을 한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육아 휴직 대체 인력이 없었기에 누군가 육아 휴직을 하면 내 일에다 그 사람 일까지 추가로 해야 하니 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 주기 어려웠다. 2010년 당시에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지 관리과에 문의했던 한 선생님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었다. 사람들은 '감히'라는 표현을 쓰며 그 사람의 '용기'를 '눈치 없는 행위'로 치부해 버렸다.


지금도 누군가는 임신을 했지만 회사 사정 때문에 단축 근무를 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육아 휴직을 할 수 없어 아침마다 눈물을 닦으며 회사에 출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법과 따로 노는 근무 환경이 아직도 곳곳에 있을 것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9년 만에 다시 임신하고 보니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게 느껴졌다. 이미 임산부 근로 시간 단축 제도를 이용하는 분들이 있었고, 이런 제도를 사용하는 게 임산부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서를 받아 왔으니 이제 법이 나에게 부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시간 근로 시간 단축을 어떻게 사용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9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할지, 10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할지 고민하다가 여유롭게 출근하는 게 좋을 듯해서 10시 출근 5시 퇴근으로 결재를 올렸다.


다만, 내 업무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법에 업무량을 줄이라는 말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근로 시간이 단축되면 할 수 있는 일의 양도 줄어드는 게 상식이지만, 내 업무량은 9시 출근 6시 퇴근 그대로였다. 업무량도 줄여 달라고 감히 요구할 수 없었다. 내 임신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 보지 않게, 업무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눈치껏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10시에 출근하는 첫날, 난 더 이상 배를 부여잡고 빨리 걷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고 천천히 걸어서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일이 이렇게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 시간은 딱 12주까지였다.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keyword
이전 04화4. 아이들에게 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