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초록이를 임신한 지 6주가 됐다. 산부인과에 가서 초록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침 일찍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산부인과에 가 보려고.”
“그래 잘 생각했다. 갔다 와서 전화해라.”
시댁에는 6주 후에 초록이의 존재를 알릴 계획이었기에 침묵하고 있었지만 친정에는 미리 알렸었다. 친정 엄마는 초록이의 존재를 알자마자 걱정부터 했다.
"마흔에 애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엄마도 넷을 키웠지만, 자식 많은 거 다 소용없더라. 너는 왜 쓸데없이 자식 욕심이 있는 거니? 지금 살기도 빠듯한데 어떡하려고 그러니?"
엄마에게 축하한다는 말은커녕 좋은 소리 하나 못 들었다. 엄마에게 나는 그냥 욕심 많은 딸, 대책 없는 딸일 뿐이었다. 자식에게 자식 많은 거 다 소용없다는 말을 하다니... 엄마에게 내 존재감이 그 정도인가? 가만가만 엄마는 오늘 산부인과에 간다는 내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 초록이를 만나러 갈 것이다.
진료실 문을 여니 맑음이, 푸름이의 존재를 알려 주셨던 산부인과 원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소변 검사 결과 임신으로 확인된다며 초음파를 보고 확인하자고 하신다. 아래옷을 갈아입고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굴욕 의자라고 불리는 이 의자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참 적응이 안 된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곳이지만, 이 의자만은 항상 피하고 싶다.
원장님은 까만 점으로 보이는 초록이를 가리키며,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고, 심장 소리도 크다고 하셨다. 빨간 두 줄로만 확인했던 초록이의 존재를 까만 점으로 직접 보니 새로웠다. 아직은 색깔로만 확인되는 존재이지만, 까만 점이 하얗게 형체를 드러내며 꿈틀대고 움직일 날이 곧 올 것이다.
이제 초록이는 세상이 인정해 주는 내 배 속의 아이가 되었다. 임신 확인서와 산모 수첩을 받아들고 병원문을 나섰다.
“나도 이제 임산부다! 9년 만에 셋째를 임신한 임산부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초록이의 존재를 다시 알렸다.
“엄마 아이 잘 크고 있대. 초음파 사진도 보고 심장 소리도 듣고 왔어.”
“어? 그래...”
엄마의 답변이 어째 좀 이상하다. 내 예상대로 엄마는 내가 초록이의 존재를 지우러 산부인과에 간 줄 아셨던 모양이다.
'엄마.... 정말....'
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이건 정말 서운하다. 빈말이라도 축하한다는 말도 안 하는 엄마가 야속했다.
남편은 바로 시댁에 전화를 했다. 산부인과에 다녀온 얘기를 하며 초록이의 존재를 알렸다. 시어머니는 전화를 바꿔 받은 나에게 정말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결혼 전, 남편과 내 궁합에 자식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셨는데, 이 며느리가 아이를 둘 낳은 뒤 셋째까지 낳겠다고 할 줄이야.
시어머니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몸 관리 잘하다 설에 보자."라고 말씀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나도 "네"라고 말하며 끊었지만, 끊고 나서 생각하니 조금 이상했다.
곧 설인데, 설에 보자고? 여기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시댁에 설에 내려오라고? 명절에는 막히는 차 안에서 5시간 넘게 불편한 자세로 있어야 하는데 설에 내려오란 말씀이지?
초록이의 존재를 부정하며 나를 걱정하는 친정 엄마, 초록이를 환영하지만 내 몸은 생각하지 않는 시어머니 두 분 다 야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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