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록이가 왔다

by 사월

셋째를 갖기로 마음을 먹은 지 한 달 후, 새벽에 일어나 임신 테스트기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테스트해 볼까? 아니야 조금만 더 있다가 해 보자.'

'나이도 있는데 설마 벌써 임신이 됐겠어?'

'임신이든 아니든 빨리 알아서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첫 소변을 받아 테스트기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1초, 2초, 3초...

시간이 지나자 선명한 두 줄이 보인다.


'어머나 헉... 이렇게 빨리?'


휴대폰을 꺼내 출산 예정일을 계산해 보았다. 2019년 9월 16일. 맑음이 생일 4일 전이었다.


선명한 두 줄은 나를 벌써 열 달 뒤로 데리고 갔다. 예정일에 초록이가 태어나면 맑음이 생일을 제대로 챙겨줄 수 없겠구나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 산후조리,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임신이라는 사실 하나만 확인했을 뿐인데, 나는 참 멀리까지 갔다.


"나 임신한 것 같아."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다.


"어 진짜?"

남편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날이 정말 올 거라고, 또는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했다.


마흔이 된 여자와 마흔 중반을 바라보는 남자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대단한 결심을 했는데, 그 결심의 첫 성과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너무 빨리 와서일까? 둘은 아직 기쁨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직 4주밖에 안 됐으니 6주쯤 산부인과에 다녀온 뒤 시댁에도, 주변에도 알리자고 했다. 나이가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데, 나이가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에 일찍 알리기는 망설여졌다.


서서히 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임신은 이성적인 인간을 본능과 호르몬에 굴복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먹고 자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허기질 때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암컷이 되었다.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오후만 되면 졸음이 쏟아졌는데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눈을 부릅뜨며 졸음을 이겨내야 했다. 거기에 허기까지 몰려왔다. 분명히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는데도 3시만 되면 배가 고팠다. 이 배고픔은 단순한 허기와는 달랐다. 속이 좋지 않은데, 위에 무언가를 채워 넣어 이 이상함을 중화시켜야만 할 것 같은 허기였다. 이 시간이면 책상 위에 당근이나 오이, 뻥튀기 같은 음식이 자리를 잡았다.


6주가 되면 산부인과에 가서 초록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그때쯤이면 임신 확인서를 뗄 수 있을 테니 근로 시간도 2시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출근 시간에 허덕이며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일찍 퇴근해서 쉴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 뽀스락대며 뭔가를 먹고 있어도 당연한 시선으로 봐 줄 것이다.


연초여서 그런지 과장님은 업무 분장과 관련해서 한 명씩 심층적인 면담을 진행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신상에 변화가 있을 예정인지, 업무 만족도는 어떤지, 하고 싶은 업무가 있는지 등을 물어볼 것이다. 이러다 과장님께 먼저 임신 소식을 알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나는 상담 중에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다.


50대 과장님은 나를 애국자라고 치켜세우셨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셋이나 낳을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산 예정일과 출산 휴가, 출산 후 일정을 구체적으로 물으셨다. 아마 내 몸 상태보다 이게 제일 궁금하셨으리라.


이미 내 머릿속에는 계획이 다 서 있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해도, 신입 원아를 뽑는 3월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정일 전날까지 출근하고 90일 출산 휴가에다 3개월 육아 휴직을 하면 3월 중순쯤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산부인과에 다녀오지도 않은 나, 초록이의 존재를 빨간 두 줄로만 확인했는데, 이렇게 회사에 말을 다 해 놓고,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일정까지 짜 놓았다.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된다.


Photo by Artur Łuczk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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