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눈이 쌓여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출할 때마다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는 출퇴근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줬고, 시장을 볼 때 내 손발이 되어 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어떤 때는 버스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줘서 내 자전거 사랑은 날로 높아만 갔다. 하지만... 이런 내 사랑을 초록이의 임신으로 접어 두어야 했다.
2018년 만삭의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산을 하러 가는 뉴질랜드의 한 장관이 기사화된 걸 본 적이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도 자전거를 타는데, 아직 배가 나오지 않은 내가 자전거를 못 탈 이유는 없어 보였다. 배가 조금 당기긴 했지만, 천천히 조심조심 타면 될 듯했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었고 주변의 시선은 달랐다. 당장 남편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겠다는 나를 말렸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생길 수 있고, 예기치 않게 접촉 사고가 날 수도 있으며, 넘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자전거를 타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걸어 다니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게 위험 요소가 훨씬 많은 건 맞았다.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데,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니 탈 거야'라고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임산부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전거를 못 타게 됐다. 바람을 가르는 그 시원한 느낌, 가벼운 속도감 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됐다. 나에게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임신과 동시에 자전거는 내 삶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자전거를 못 타게 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에 하는 책모임 참석이 조금 어려워졌다. 책모임 장소는 도보로 25분 거리에 있었는데, 무거운 몸으로 걸어서 왔다 갔다 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고, 버스는 제시간에 잘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탄다고 해서 걷는 시간이 확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고, 택시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건 생각지 못했다.
임신 기간 동안 책모임에서 빠지는 건 내 선택지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목요일이면 책모임에 참석을 했다. 1시간 정도 외출을 쓰고 참석한다거나, 바로 오는 버스를 운 좋게 잡아타고 간다거나 했지만, 대부분 걸어서 갔다. 얼굴이 벌게져서 책모임에 참석하는 나를 보고 다들 안타까워하긴 했다. 자전거는 포기해도 책모임은 포기할 수 없는 걸 어쩌랴.
어느날 책모임이 있는 목요일 오전에 문자가 한 통 왔다.
“시간 맞춰서 회사 앞으로 갈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가끔 책모임에서 나들이를 갈 때면 본인 차를 이용하자고 먼저 제안하며 기사 역할을 자청하던 언니였다. '흑기사'는 될 수 없지만 '박 기사'는 될 수 있다는 장난스러운 농담을 던지며, 항상 기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던 언니였다.
책모임에 가려고 점심때 나왔더니 회사 정문 앞에 언니의 까만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언니는 여유롭게 도착했는지 운전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 저한테 온다고 서둘러 나오신 거예요?"
"아니에요."
"고마워요! 정말 감동이다."
"여기 오는 덕분에 책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석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다음 주에도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언니는 그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빠지지 않고 나를 데리러 왔다.이 위대한 행위는 내 임신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지각이 삶이라고 하던 언니였는데, 언니는 나를 데리러 오는 날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항상 회사 정문 앞에 차를 대기해 놓고 책을 보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했는데, 언니는 나 덕분에 책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석할 수 있으니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신기하게 그 기간 동안 언니에게 다른 스케줄이 생기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정이 있다며 책 모임에 가끔 빠지기도 하는 언니였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언니는 그날만큼은 모든 걸 나에게 맞췄던 것 같다. 나를 책모임 장소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을 1번으로 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