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회사를 그만둔다고?

by 사월

퇴근 시간 5분 전, 회사 내에서 편하게 신던 슬리퍼를 벗고 옆에 놓아둔 운동화나 플랫 슈즈로 갈아 신는다. 퇴근 준비를 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슬리퍼를 벗으면서 보니 슬리퍼 사이로 내 발등의 살이 불룩 올라와 있다. 오늘도 발이 많이 부었구나.


임신으로 몸이 더 잘 붓는데다가 의자에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혈액 순환이 안 되어서 퇴근 시간쯤에 내 발은 작은 코끼리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몸집도 커지고 발도 커져서 임신 전에 넉넉했던 운동화도, 한 치수 큰 플랫 슈즈도 발에 꽉 끼었다.


퇴근하면 부은 다리로 터벅터벅 집에까지 걸어왔고, 집에 와서는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이날도 그런 날이었다. 부은 다리를 베개 위로 올려놓고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까지만 회사(학원) 다닐 것 같아.”


이게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왜’라는 질문에 남편은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만 답했다. 당장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한창 바쁜 시간일 테니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돈 들어갈 일이 넘쳐나는 아들 둘에다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회사를 그만둔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 저녁을 대충 챙겨준 뒤 나는 다시 누웠다. 머리가 복잡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니 잤다가 새벽 2시에 깼다. 남편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다시 잠들기에 정신은 말똥 했고 머리는 복잡했다. 재활용하는 날인데, 재활용 쓰레기는 구석에 그대로 있었다. 나가서 재활용이나 하고 올까 했는데, 생각보다 재활용 쓰레기가 너무 무겁다. 할 수 없이 식탁에 앉아 어제 읽던 책을 들었다.


그사이 남편이 들어왔다. 술을 좀 마신 모양이었다. 남편은 마음이 복잡하면 정리가 될 때까지 입을 닫는 사람인데다가 평소에도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만 확실했다.


남편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은 책만이 구세주였다.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 줄 유일한 존재. 읽다 보니 책 속의 한 문장이 책 위로 떠오른다.


옳은 선택이란 없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박웅현, 여덟 단어-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지금 내가 할 일은 신세 한탄이 아니라 남편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웅현의 책을 다 읽고, 정리까지 마쳤더니 벌써 바깥은 밝아져 있었다. 아침을 준비해서 아이들 먹이고 띵띵 부은 다리를 의자에 잠시 올려놓고 마사지를 한 뒤 시계를 보니 후다닥 준비해서 회사에 가도 지각할 각이다.


걸어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안 타던 자전거를 꺼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자전거는 바람이 많이 빠졌는지 자전거 페달이 잘 굴러가지 않았다. 열심히 굴렸지만 임산부에게는 무리였다. 예상대로 회사에는 지각했다.

띵띵 부은 다리, 뭉친 배, 낑낑대며 타고 온 자전거 때문인지 출근하자마자 지쳤다. 아... 쉬고 싶다. 눕고 싶다.

남편도 그랬겠지? 힘들었겠지?

도저히 못 버틸 사연이 있었기에 그만둔 거겠지?

그럴 땐 쉬어야지. 쉬면서 몸을 돌봐야지....


나는 점심때 은행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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