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리 이제 아껴 살아야 해

by 사월

평일 저녁.

아이들을 식탁에 앉혀 놓고 집안이 돌아가는 상황을 얘기해 줬다. 아빠의 퇴직에 따른 삶의 변화를 아이들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예전에 아빠는 돈만 버는 아빠였잖아. 근데 이제 돈도 벌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되기로 했어.

돈만 버는 아빠는 돈을 많이 벌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잖아?

돈도 벌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는 돈은 조금 벌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어떤 아빠가 좋을까?



"돈도 벌고 같이 시간도 보내는 아빠요."


좋아! 근데 당분간은 아빠가 돈을 벌지 않으니, 우리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해.

일단 아껴야겠지? 어떻게 아낄까?

너희들 쉬할 때 화장실 문을 열고 하지? 그럼 불을 켤 필요가 없어. 전기를 아끼면 좋잖아.

또 내가 쉬를 하고 있는데, 누가 쉬가 마렵다고 하면 변기물은 마지막에 한 번만 내리자. 그럼 물을 아낄 수 있어.

샤워 시간도 줄여 보자. 샤워 시간이 너무 길어!!!!!

그러고 또 뭘 아낄 수 있는지 찾아보자. 이렇게 아낄 수 있는 건 아끼면서 우리 가족이 재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 그게 더 좋은 거야.


초반에는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 불 켜지 마라, 변기물을 벌써 내리면 어떡하냐, 불 꺼라' 등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며 집안 구석구석 세는 에너지를 잡던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집에 있다고 해서 즐거운 일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아빠가 장난감이나 간식을 사주는 것도 아니니 가족이 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거기다 잔소리 한번 한 적 없는 아빠가 집에 있으면서 수시로 잔소리를 해대니 차라리 아빠가 돈을 많이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큰애 맑음이가 나에게 와서 조심히 말한다.


"엄마 그냥 돈만 버는 아빠도 괜찮은 것 같아요."

"왜?"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오면 그걸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놀러도 갈 수 있잖아요."

"아빠랑 같이 못 하잖아."


"그래도..."

"엄마 몸 좀 괜찮아지면 우리 여행 계획을 짜보자. 아빠와 같이 주말에 여행을 가는 거야."


"갈 수 있어요? 우리 돈도 없잖아요."

"갈 수 있어. 어디 갈지 생각해 보자."



Photo by Josh Appel on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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