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이렇게 쉬어 보는 것 같아.”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남편은 대학생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시간 대비 큰돈을 벌 수 있는 학원 강사를 메인 아르바이트로 하고 틈틈이 과외도 하며 초록초록한 시기를 회색 시간을 위해 썼다. 이런 생활은 졸업 후 취업만 하면 바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벌면서 취업 준비도 같이해야 했던 남편에게 취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되고 싶어 했던 '아나운서'는 오랜 준비 시간과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남편에게는 취업 준비에 몰두할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현실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이상처럼 느껴졌을까? 남편은 자연스럽게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욕망을 소거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학원 강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런 삶이 조금 안정됐을 때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남편은 본인의 학원을 차렸다. 학원에서 월급제가 아닌 비율제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 인원이면 학원을 차리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으로 무작정 부동산을 찾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임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간판을 내걸었다.
처음으로 본인의 학원을 차린 남편은 무척 설레했다. 하지만 학원은 초반에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가 그 후 완만한 하강세를 탔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학원을 차린 게 아니었기에 작은 부침에도 크게 흔들렸다. 하강세를 타면서부터 남편은 더 바빠졌다.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가끔 만나는 아빠가 안아주려고 하면 나에게 달려왔다.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준다고 할 때만 아빠 옆에 붙어 있었다. 아이들 크는 거 하나도 못 보고, 항상 다음 달에 나갈 월세와 월급 걱정을 하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삶이 너무 싫어서 남편에게 학원을 접고 월급 강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던 남편은 한 해가 갈수록 내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아직 배움이 필요한 나이인데, 조금 더 나이 들면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힘들어질 거라는 판단을 한 남편은 마침내 10년 동안 운영하던 학원을 접고 다른 학원의 강사가 되었다.
남편은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1년 동안 능력을 보여 준 뒤 연봉 협상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은 1년에 많은 것을 걸었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는데... 남편은 1년 만에 그곳을 나왔다. 나에게 그만둔다는 한마디만 하고.
남편은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입원한 환자처럼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있었다. 그러다 며칠 뒤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운동도 하고, 집안에서 책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요리를 하겠다고 하고, 뭘 배우고 싶다고도 했다. 남편은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마침 도서관 문화 강좌 프로그램에서 기타 회원을 모집했다. 남편은 예전부터 시간이 되면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었고, 우리 집에는 이미 남편이 대학 때 사놓은 기타가 있었다. 남편은 설레했고, 일주일에 1번 기타를 배우러 갔다. 기타를 메고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나도 설렜다.
마흔이 넘도록 주말에는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 평일 저녁을 가족과 제대로 보내본 적이 없는 사람. 이 사람이 이제야 제대로 된 쉼을 느껴 보는 같아서 안쓰러웠다.
Photo by Jacek Dyla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