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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16. 2023

내 방이 필요해요

사춘기의 시작

푸름이가 5학년이 되자 자기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조금씩 피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지 하며 크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푸름이는 시간이 될 때마다 자신에게 방이 필요한 이유를 하나씩 나열하며 자기 방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중학생인 맑음이는 자기 방의 필요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초등학생인 푸름이는 자기의 방을 강하게 원했다. 아침형 인간인 ‘형’과 올빼이형인 ‘자신’이 한방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며, 형이 아침마다 노래를 너무 크게 틀어 놓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소연하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이 나름 크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방 세 개를 ‘잠자는 방’,  ‘노는 방’,  ‘옷방’이라고 불렀는데, 명이서 모두 '잠자는 방'에서 잠을 잤고 거실에서 놀았기에 '노는 방'의 존재는 없어도 될 듯했다. 짐도 그리 많지 않아서 좀 더 좁은 평수로 이사를 가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짐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없어도 될 것 같았던 '노는 방'에 이층 침대와 책상 두 개가 들어왔다. '노는 방'은 이제 아이들이 잠을 자고 공부하는 방이 되었다.(나도 가끔 이곳에서 아이들과 아침을 맞았다.) 옷과 책, 놀잇감 등이 빈 공간을 계속 채워갔고 어느새 집은 우리 사이즈에 딱 맞는 집이 되었다.


그러다 남편이 학원을 정리하면서 학원에 있던 어마어마한 책들과 여타 짐들이 우리 집 곳곳에 들어왔고 초록이를 위한 육아용품들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이 살기에 좁은 집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푸름이는 자기 방을 갖고 싶다고 강하게 원하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가 학원 차리면 그때 생각해 보자.


이렇게 푸름이를 달랬다.


푸름이의 강한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지 남편은 얼마 뒤 학원을 차렸다. 아빠가 학원을 차린다는 건 곧 자신의 방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푸름이는 누구보다 앞서서 아빠의 학원 정리를 도왔다.



하지만 아빠의 학원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데도 집에 있는 짐들은 줄어들지 않았고, 엄마도 별말이 없자 푸름이는 강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좁으냐?
 친구네 집은 방이 13개나 된다(말이 되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든 내 방을 만들어 주든 해라.
 우리가 가난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못 가는 거냐?


아빠가 학원을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원이 자리 잡을 때까지 이곳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학원은 ‘중간고사 준비 기간/중간고사 기간/기말고사 준비 기간/기말고사 기간/방학 특강’ 패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빠가 생각보다 여유 있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푸름이는 모를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고 푸름이가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점심때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푸름이 방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날을 잡아 짐을 옮기고 정리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힘드니 매일 조금씩 조금씩 짐을 정리해서 푸름이의 방을 마련해 주자는 데 합의하였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푸름이의 방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초록이가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두었던 그림책을 정리하고 잘 놀지는 않지만 두뇌 계발에 좋다고 해서 두었던 장난감 등도 정리했다(다 물려받은 것들이긴 하다). 나와 남편의 소유물 중에서도 ‘언젠가는’을 위해 두었던 것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집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남편의 ‘책’은 출근길에 조금씩 학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니 곧

푸름이를 위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기다려라 푸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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