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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18. 2023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다: 내 방이 생겼어요

사춘기의 시작

초록이를 시작으로 가족 모두가 하루 차이로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바쁘게 보내던 우리의 일상이 잠시 멈추었다. 아이들은 좀비처럼 집안을 걸어 다녔고, 안 자던 낮잠을 잤고, 밥은 절반도 먹지 못했다. 남편은 아프다며 안방에 콕 박혀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만 주야장천 봤다. 항상 할 일이 쌓여 있다는 남편이었는데, 몸도 머리도 아무것도 쓸 수 없다며 영혼 없는 표정으로 스마트폰만 주시했다.


다들 입맛을 잃었다. 달달하고 바삭바삭한 게 먹고 싶다고 해서 새벽배송으로 과자만 5만 원어치 주문했다. 과자를 받자마자 아이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과자를 나누었다. 입맛이 없는데 과자는 잘 들어갔다. 덕분에 한 끼는 과자로 해결했다.


좀비처럼 며칠 멍하니 보내다가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집안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다. 푸름이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시간이 많으니 지금 가구와 침대를 옮겨서 자기 방을 만들자고 했다. 온 가족 격리라는 게 푸름이에게는 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미션: 옷방을 푸름이 방으로 만들기


<실행 순서>

1. 안방에 있는 책장 2개를 거실로 옮긴다.

2. 옷방에 있는 가구와 옷, 초록이의 짐을 안방으로 옮긴다.

3. 아이들 방에 있는 이층침대를 분리해서 옷방(푸름이 방)으로 옮기고, 책상도 옮긴다.


격리 기간 동안 푸름이의 방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한 정리가 시작됐다. 책장을 옮기기 위해 책장의 책을 모두 뺐다. 책장을 거실로 옮기고 책도 거실로 옮겼더니 거실에는 책무덤이 만들어졌다. 책을 다시 꽂으면서 하나씩 버릴 책을 고르니 거기에 또 책무덤이 만들어진다. 이 일은 남편이 전담했다.


옷방의 가구와 옷을 안방으로 옮겼다. 우리 가족의 옷에다 초록이의 짐들까지 쌓이니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옷방은 점점 비워졌고 안방은 점점 채워졌다. 안방은 어느새 알록달록한 짐들로 가득 찼다. 이사 뒤의 심난한 모습이랄까? 잠잘 공간만 겨우 확보했다.


이제 이층침대만 분해하면 된다. 이층침대는 생각보다 복잡하니 격리 해제 후에 업체에 전화해서 부탁해 보자고 했는데, 빨리 자기 방을 갖고 싶은 푸름이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맑음이와 푸름이는 도구를 하나씩 들고 침대의 사다리를 떼고, 나사를 풀더니 뚝딱 이층침대를 분해해 놨다. 어머나... 어린 줄만 알았는데, 어른 한 명 분의 몫을 해 내는 애들이다.


침대를 옮기고 책상을 옮기니 방다운 방이 되었다. 드디어 푸름이의 방이 완성되었다. 불필요한 짐이 하나도 없는 깔끔함 그 자체였다. 엄마는 아직 엄마만의 방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너는 너만의 방이 생겼구나. 너희들이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는 날 엄마도 식탁 한자리를 벗어나 엄마만의 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겠지?


푸름아 이 방은
엄마가 특별히
네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스무 살 이후에는
엄마에게 반납해야 해.
그때까지 깨끗하게 써 줘.


푸름이는 "그런 게 어딨어요?" 하며 맞받아치다가 "형은요?" 하고 묻는다. 형도 스무 살 이후에는 방을 반납할 거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한다. 스무 살에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계속 말했던 터라 크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푸름이 방이 완성되니 맑음이 방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자기 방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푸름이가 형 방에 다녀오더니 표정이 좋지 않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대뜸 나에게 묻는다.


"엄마, 형 방이 커요? 제 방이 커요?"

"뭐라고?"


"아 저 방을 제가 할 걸 그랬어요. 형 방이 더 큰 것 같은데..."

"네가 남향 방을 갖겠다고 고집을 부렸잖니. 그렇게 갖고 싶다던 방이 생겼는데, 막상 생기니까 형 방이 더 좋아 보여?"


"네"

"원래 그런 거야. 남의 떡이 커 보이지. 형한테 방을 바꾸자고 해 볼까?"


푸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니라고 한다. 형 방보다 좋은 점을 하나 찾은 모양이었다.

그래 다행이다.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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