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Mar 02. 2023

부끄러워요

사춘기의 시작

푸름이가 맑음이에게 묻는다.


"형,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학교 일진이 우리 옆 테이블에 앉으면?"

"음... 불편하지."


"근데 그때 초록이가 떼를 쓰고 울면?"

"아.. 개빡치지..."


"그래서 내가 근처 식당에는 안 가려고 하는 거임. 졸업식에도 못 오게 하고."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학교의 누군가에게 가족의 존재를 들킨다는 게 그렇게 싫은 일인가? 맑음이가 말한 '불편하다'는 말은 일진의 존재가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는 게 불편하다는 말이다.


초록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들은 동생이 생겼다고 정말 좋아했다. 초록이가 태어난 뒤에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꼬물꼬물 한 초록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고 싶어 했다. 형들은 초록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쯤 거기서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며 열심히 뒤집기 연습을 시켰으며, 초록이 앞에 좋아하는 인형을 놓고 매일 배밀이 연습도 시켰다.


아기띠로 초록이를 안아 주기도 하고, 같이 목욕놀이도 했었는데...

초록이가 '형아'라는 말을 처음 한 날 정말 감동받는 표정을 지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들은 초록이를 귀찮아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대놓고 초록이를 왜 낳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거기에다 지금은 초록이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같이 외출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초록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초록이의 성별을 궁금해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까? 어린 동생을 보느라 엄마가 너무 바빠 보여서 그랬을까? 초록이 때문에 조용할 틈이 없는 우리 집이 싫었던 걸까? 아무 때나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초록이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아서 그러는 걸까? 가끔 심하게 떼를 쓰는 초록이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아서일까?


아이들에게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


화장도 하지 않고, 제대로 꾸미지도 않으면서 머리는 빠글 하게 파마한 엄마의 존재도 한몫했을 것이다. 엄마는 빠글 머리가 정말 좋은데, 아이들은 엄마의 빠글 머리를 너무나 싫어한다. 특히 푸름이가...


파마를 하고 온 날, 푸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 밖에서 만나면 서로 모른 척합시다."


어느 날 푸름이는 진지하게 내 머리를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웨이브가 어울려요. 빠글 머리가 아니라."


이날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알았어."라고 쿨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엄마는 빠글 머리가 정말 좋다면서...


늦둥이가 있는 평범해 보이지 않은 가정, 꾸미지 않는 엄마,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초록이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키는 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다른 점이 자랑거리가 되곤 했는데, 사춘기가 되고 보니 친구들과 다른 점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되어 버렸나 보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루하루가 바쁜 엄마는 이제야 아이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바꿀 수 있는 건 '꾸미지 않는 엄마'에서 '꾸미는 엄마'로의 변신뿐... 다른 건 바꿀 수 없다.

빠글 머리를 포기해야 하나?? 머리를 감고 가만히 두면 어느새 생기를 되찾는 이 머리가 정말 좋은데...

화장품을 하나씩 장만해야 하나? 유통기한이 다 돼서 버리기를 몇 차례... 그러다 아예 사지 않고 있는 중인데...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건 욕심인가? 이제까지 사춘기 아들의 화살 같은 말에도 무너지지 않을 내면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외면을 키우는 노력도 해야 할 듯하다. 멋진 엄마가 될 수는 없어도 아들에게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엄마가 말이야... 안 꾸며서 그렇지... 꾸미면 좀 예쁘기도 해.


집 근처에서 가족이 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당분간 힘들 듯하다. 집 근처 식당에 간다면, 아이들과 테이블을 따로 해서 앉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전에 한 번 자리가 없어서 이렇게 해 보았는데,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ㅜㅜ) 


얘들아! 그래 부끄러울 수 있어. 그때는 그럴 수 있어. 엄마도 그때 그랬을지도 몰라.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으로만 봤다, 아들의 졸업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