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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07. 2023

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요?

사춘기의 시작

오후에 외출했다 저녁 늦게 들어온 푸름이에게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오늘 누구랑 놀았어? 
어디서 뭐 하고 놀았어?


"맨날 일요일 2시에 노는 친구들 있잖아요. 그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푸름이는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엄마 이건 제 사생활이에요. 엄마는 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요?

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어머 나보고 '남'이라니... 잠시 벙쪄 있던 표정을 수습하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엄마가 남이니?"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다 '남'이죠. 엄마는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이니 그런 의미 정도는 알지 않아요."


"'남'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 '어떻게 우리가 남이니?' 할 때 '남'은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밀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야."

"제가 말한 '남'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말하는 거거든요."


<표준국어대사전>


"맥락에 맞게 써야지..." 하며 아이의 표현을 고쳐 주려다가 말았다. 엄마니까 아들이 누구랑 노는지, 어디서 노는지, 뭐 하고 노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사생활'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말 우리가 남인 거니?


가끔 푸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말문이 막힌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내가 설명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내 언어로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게 왜 당연한 건지에 대한 논리가 나에게는 없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배운 나는 '부모의 관심'을 '사생활 침해'로 규정하며 선을 긋는 푸름이를 설득하기 어렵다.


-존엄성을 위협하는 일이 되는지 아닌지는 뒤에 숨은 의도가 무엇이며 피후견인의 자유에 대한 개입이 투명하고 정당하게 비춰지는가에 달려있다.
-어린이는 존중받아야 할 권위나 의지가 아직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인성 인지증이나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러한 의지나 권위를 상실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럴 때는 가도 되는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곳, 먹어야 하는 음식, 복용해야 하는 약 등등에 대해 다른 사람이 나설 수밖에 없다. 아직 권위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것들이 존엄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아직 자라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페터 비에리, 삶의 격, 49~50쪽>


내가 하는 행동(간섭)이 아이의 존엄성을 깨트리고 아이에게 무력감과 굴욕을 주는 행동인가? 

나는 아이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휘두르는가?


아니다. 나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키우고 있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내가 이상한 엄마로 비치더라는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아이의 자아가 더 커진 걸까? 

그걸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걸까?


아이는 자신의 자유에 대한 후견인의 개입이 투명하고 정당하게 비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보다 푸름이는 후견인 따위는 필요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저 다 컸거든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세상에 대해 엄마보다 더 잘 알 거든요. 
엄마는 요즘 애들 잘 모르잖아요.

14살 푸름이는 겸손을 잃었다. 엄마는 40년 넘게 겪어도 세상을 잘 모르겠는데 14살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푸름아... 네가 아는 세상은 어떤 곳이니? 그렇게 쉽게 정의 내려지는 곳이니?


엄마는 오늘, 물음표만 가득 던질 뿐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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