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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25. 2023

 사진으로만 봤다, 아들의 졸업식

사춘기의 시작

작년 어린이날, 푸름이의 마지막 어린이날이었다.

푸름이는 친구와 같이 서바이벌 체험을 한다며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거부했다. 아침 일찍 푸름이는 친구와 함께 떠났고 우리는 남겨졌다. 바닷가에 놀러 갈 계획이었는데, 푸름이 때문에 오전 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허망하게 앉아 있는데, 푸름이 친구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잘 놀고 있는 푸름이 사진과 함께 걱정 말라는 멘트가 따라왔다. 그 엄마에게 고맙다며 형식적인 답장을 보냈다.


푸름이는 분명히 친구랑 근처 산에서 서바이벌 체험을 한다고 했는데... 그 엄마가 알려 준 서바이벌 체험장은 집에서 멀었고, 가격도 비쌌다. 이런 줄 알았으면 미리 입장료라도 보냈을 텐데... 엄마를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구나.


미안한 마음에 아이스크림케이크를 하나 보냈다.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었다. 내 마음은 정말 설명 불가였다. 그 엄마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그 친구 가족이랑은 시간을 보내면서 왜 우리 가족이랑은 안 되는 거지? 답답하고 속상했다.


며칠 전 푸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절대 오지 말라고 해서 못 갔다. 오면 자살한다는 말까지 했다. 푸름이는 우리 가족 모두를 졸업식에 못 오게 했고, 점심도 같이 먹지 않겠다고 했다. 친구들 엄마도 졸업식에 오지 않기로 했으며,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거라고 했다.


푸름이 졸업식 날 연가를 낼 계획이었는데 집에 있으면 뭐 하나 싶어서 그냥 출근했다. 점심 때는 집에 와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남편 것도 차려 놨더니, 남편은 제자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계란프라이를 두 개나 올린 남편의 김치볶음밥을 치울 때쯤 푸름이가 왔다. 밥 먹고 친구들 만나러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식탁에 덩그러니 있던 김치볶음밥을 데워 줬더니 배가 고픈지 후다닥 먹는다. 엄마가 만든 음식을 거부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순순히 먹는다.


밥을 먹고 있는 푸름이 앞에 앉아 졸업식은 어땠는지 물었다. 안 오기로 했던 친구 엄마들이 다 왔다고 했다. 친구 엄마가 꽃다발을 빌려 줘서 사진도 찍었다고 했다. 그 엄마였다. 어린이날 푸름이를 데리고 서바이벌 체험장에 간 엄마. 아.. 고마운 마음도 잠시... 창피하고 속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친구들하고 같이 점심 먹는다더니 왜 왔냐고 물으니, 친구들이 가족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는데 거길 어떻게 따라가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 정말... 네가 이상한 거니? 내가 이상한 거니?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푸름이가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들과 잘 놀고 왔으면서 뭐가 우울하냐고 물었더니 졸업을 한 게 슬프단다. 다시는 초등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게 슬프단다. "졸업식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라는 박완서 작가님의 말을 들려주며 "그래도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고 싶지는 않지?" 하고 물으니 다시 다닐 수 있다면 다니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날까지 학교 가기 싫다며 늦게 갔으면서, 마지막 주에는 정말 매일 아침 선생님이 전화하게 만들었으면서... 진심이니?


이게 푸름이의 모습이다. 꼭 몸소 겪어야 하는 푸름이... 겪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푸름이. 너의 사춘기도 그런 거겠지? 다 겪은 뒤 그때 엄마에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겠지?


저녁에 푸름이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안겨 주고, 푸름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시켜 먹었다. 그랬더니 조금은 졸업식날 같았다. 식탁에 앉아 카톡을 확인하다 프로필이 수정된 사람들의 사진을 하나씩 봤다. 다들 프로필 사진을 졸업식 사진으로 바꿔 놓았다. 나는 못 간 그곳에 다들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마음에 또 씁쓸함이 몰려왔다. 그 엄마의 카톡 프로필도 수정돼 있었다. 확대해서 보니 울 푸름이가 친구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들 졸업식을 다른 엄마의 프로필 사진으로 확인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엄마에게 푸름이 사진을 달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말을 걸면 그 엄마에게 어린이날부터 졸업식날까지의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나 이상한 엄마 아니라고... 

바빠서 자식 제대로 못 챙기는 그런 엄마 아니라고... 

어린이날도, 졸업식도 안 챙겨주는 매정한 엄마 아니라고...


엄마가 엄마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다니 이것도 참 우습다.

답답함이 몰려온다.

눈물이 흐른다.



Photo by Vasily Kolo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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