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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24. 2023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

사춘기의 시작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니 집안 풍경도 조금씩 바뀐다. 


욕실 2개도 모자라...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 아침에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또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아침에 씻었을 때 상쾌한 기분을 알아버린 것인지, 자면서 눌린 머리를 다시 감아 주어야 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샤워 시간도 5배 이상 길어졌다. 아이가 씻으러 들어가면 보일러가 계속 돌아가고 물소리도 계속 난다. 한참 기다리다  "언제 나오니?", "그만 헹구고 나오자."라고 말하면 아직 머리도 안 감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물 틀어놓고 뭐 하는 거니?"라고 물으면 답이 없다. 


가스비와 수도료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고지서를 보여 주면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표정이다. 야박하게 용돈에서 뺀다고 할 수도 없고... '지구를 위해 물을 아껴 쓰자', '오래 씻는 건 피부에 좋지 않다.'라고 설득해 보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나는 돈이 아까운 걸까? 지구가 걱정되는 걸까? 아이의 피부가 걱정되는 걸까? 


드라이어야 어딨니?

안방 화장대 위에 항상 위치해 있던 드라이어가 자꾸 집을 나간다. 예전에는 남편만 드라이어를 써서 항상 그 자리에 잘 있었는데, 아이들이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드라이어는 집을 잃었다. 가끔 사춘기 1 방에 있기도 하고 사춘기 2 방에 있기도 하고 거실에 있기도 한다.


남편은 요즘 출근 전에 드라이어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춘기 1, 2에게 드라이어를 쓰면 제자리에 놓고 가라고 해도 등교 시간이 촉박하니 드라이어를 쓰고 그 자리에 둔 채 학교에 가 버린다. 아웅... 이러다 1인 1드라이어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각자 방에 드라이어 하나씩.


그나저나 오늘 사춘기 2 머리 스타일이 맘에 딱 들었다. 5:5로 가른 가르마 덕분이 눈이 또렷이 보여서 어찌나 예쁘던지... 밤에 자기 전에 롤로 머리를 살짝 말고 자더니만 오늘 아침에 드라이 한 번으로 자연스럽게 스타일링이 딱 완성되었다. 이런 사춘기 2의 모습이 아직은 귀엽다.


아침이면 향이 가득~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향수 키트였다. 비대면 직업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서 조향사를 신청했더니 향수 키트를 집으로 보내 주었다. 아이는 유튜브 영상에서 알려주는 대로 키트에 있는 여러 재료를 섞어서 나만의 향수를 만들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었다. 아이는 그걸 학교 갈 때마다 칙칙 뿌리고 가더니 어느 날 생일 선물로 향수를 사달라고 했다.


아빠가 잘 안 쓰는 향수도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향을 좋아한다기보다 향수의 존재를 반기는 듯했다. 어른의 영역에 성큼 들어간 느낌이었을까? 아빠의 진한 향수를 여러 번 칙칙 뿌리고 등교를 할 때면 아이 방에도 진한 향이 남았다.


식비 급상승

사춘기 2는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맛이 없으니 엄마가 되도록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춘기 1은 젓가락을 들면서 엄마가 만든 것은 여기서 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가 시장을 봐서 다듬고 무치고 볶아 만든 반찬보다는 밖에서 파는 반찬이 더 맛있다고 해서 언젠가부터 반찬가게에서 대부분의 반찬을 사 오고 있다. 식탁 위에 올려진 음식 중 내가 만든 것은 무엇일까??? 밥???? 정말 밥뿐인가? 이러다 밥도 햇반으로 대체하게 될지 모른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 외식을 하는 횟수도 늘었다. 잘 먹고 쑥쑥 커 주는 아이들이 예쁘기도 하지만, 한 번씩 쑥 나가는 외식비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거하게 먹은 날에는 남편에게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항상 닫혀 있는 방문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 우리 집의 방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하다못해 화장실도 항상 열려 있었다. 식사 중에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닫고 일을 보는 거라고 알려줄 정도로 아이들은 문을 열어 놓고 무언가를 하는 게 익숙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은 뭔가를 들킨 표정으로 엄마를 봤다. 그러다가 당당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엄마 노크 하고 들어오세요.


이제 나는 아이들의 영역에 들어갈 갈 때면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똑똑 노크를 하고 엄마가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아이가 말이 없으면 기다렸다 다시 노크를 한다.


아이들 방 문이 닫히니 아이들이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줄었다. 밥 먹을 때 나왔다가 밥을 다 먹으면 쪼르르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대화 시간도 줄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무언가를 먹을 때뿐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퇴근할 때 간식거리를 사들고 집에 가곤 한다. 잠깐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간단히 떡볶이나 붕어빵, 핫도그 등을 산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맛있는 거 사 왔다."라고 큰소리로 말하면 아이 방 문이 열린다. 아이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음식을 본다. 나보다 음식을 더 반기는 듯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먹으며 대화를 한다. 이 시간 참 소중하다. 

아이는 모르겠지?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눈 한 번 더 마주치기 위해, 대화 한마디 더 하기 위해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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