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을 필사로 시작해. 필사를 시작한 지는 1년이 조금 안 됐어. 그동안 페터 비에리 교수님의 <자기 결정>, 일자 샌드의 <서툰 감정>, 마리야 이바시키나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신형철 교수님의 < 인생의 역사> 등을 필사했어.
필사의 방법은 다양해. 책에 따라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필사를 하면 돼. 난 위의 책들을 한 가지 방법으로 필사하지는 않았어. 책 전문을 필사하기도 하고, 부분 필사를 하기도 했어. 한 문장이나 한 단어를 필사한 뒤 떠오르는 내 이야기를 적기도 하고, 시를 필사한 뒤 에세이를 쓰기도 했어. 은유 작가의 <올드 걸의 시집>처럼 말이야.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필사를 했더니 어떤 책이든 나만의 방법으로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가 생겼어.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두 달 동안 부분 필사하며 다 읽었지 뭐야. 두꺼운 3권의 책을 말이지.
요즘 필사하고 있는 책은 페터 비에리 교수님의 <삶의 격>이야. 매일 10~20쪽 정도씩 부분 필사를 하고 있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밑줄을 필사하는 거지. 이걸 하루에 했더니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는 거야.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고 매일 아침 해당 분량의 밑줄을 필사하고 있어. 그래도 2시간 정도는 걸리는 듯해.
아침에 필사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필사는 명상 같아. 새벽 시간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식탁에서 혼자 필사를 하거든. 그럴 때면 이 공간에 책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아.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어.
필사를 하다 보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이 보이기도 하고 책 속에 밑줄을 긋지 않은 부분이 다시 보이기도 해. 그러면 그 부분을 다시 읽고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지. 밑줄을 긋는 손과 필사를 하는 손은 다른 눈을 만드나 봐. 신기하지?
오늘 필사해야 하는 분량은 평소의 두 배였어. 보통 아침에 필사를 다 끝내고 출근하는데 오늘은 절반밖에 필사를 하지 못한 거야. 출근 준비할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펜을 놓았어. 이렇게 서둘러 필사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거든. 나머지는 내일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하려고.
오늘 필사한 내용을 이야기해 줄게. 오늘 내용 중 노동과 돈이 우리의 존엄성을 보장해 준다는 내용이 흥미로웠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철학 교수님이 얘기해 주니 더 그랬던 것 같아.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행위는 물질적 자립을 가능하게 해 주므로 인간의 존엄성 보장해 줘. 나는 내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타인의 인정도 받게 되지. 거기에다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생기기도 해.
하지만 내 능력에 못 미치는 노동은 나를 소외시키고, 너무 많은 시간의 노동은 나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어. 이럴 때 소외는 존엄의 박탈로 이어지지. 그냥 일하는 기계가 되어 버리는 거야.
돈이 없다는 걸 뭘까? 돈이 없다는 건 독립성의 상실을 뜻한다고 해. 무능함을 인정해야 하고, 누군가에 의존해야 하지. 그리고 돈이 없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건 굴욕을 당할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협박과 위협에도 취약해져.
돈이 있으면 뭐가 좋을까? 너무 많지? 일단 위에서 말한 여러 굴욕, 협박, 위협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어. 또 하고 싶은 말도 당당하게 할 수도 있어. 돈은 즉 외적인 독립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의 노동과 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돈이 있다면 내 '삶의 격'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서 항상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없으면 '삶의 격'이 떨어지지만, 이것만 충족된다고 해서 내 '삶의 격'이 유지되는 건 아닌 것 같아. 이것 외에도 내 '삶의 격'을 유지하는 것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지.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야.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을 페터 비에리 교수님이 쉬운 일상생활의 예로 하나씩 짚어 주시거든.
아~ 나에게 필요한 걸 하나 알긴 했어. 그건 바로 '고요한 시간'이야. 이 시간이 있어야만 내 삶이 안정되고 생각도 차분해져. 이 시간을 갖지 못하면 내 삶은 흔들리기 시작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