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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15. 2023

[공개 일기] 수요일: 봄 기운이 느껴져

며칠 전 회사 옥상 텃밭에 다녀왔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봄이 되니 텃밭의 상태가 갑자기 궁금해졌거든.


작년 10월쯤 상추를 수확한 뒤, 텃밭을 계속 방치해 두었는데, 겨울이 다가올 때쯤 회사 동료가 거기에 냉이씨를 뿌려 보자고 제안을 하는 거야. 지금 뿌리면 봄에 수확해서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그날 처음으로 알았어. 냉이도 씨를 뿌려 재배할 수 있다는 걸 말이야. 봄나물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거라고만 생각했거든.


빈 땅에 냉이씨를 뿌려 놓은 뒤 우리는 한동안 텃밭에 올라가 보지 않았어. 그러다 어느 날 봤더니 냉이 싹이 쑥 올라와 있는 거야. 신기했어. 조그만 새싹들을 본 건 반가웠는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어. 이 여린 것이 추운 겨울을 버티고 따뜻한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지. 그후로는 완연한 겨울이 시작되었기에 옥상에 올라가 보질 못했어.


그러고 올해 처음 텃밭에 올라가 봤는데... 과연 그 냉이는 살아 있었을까?

살아 있었어!!! 사진으로 보여 줘야 하는데... 아..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씨를 정말 많이 뿌렸는데, 냉이는 딱 7뿌리 정도 살아남아 있더라. 잎을 옆으로 넓게 드리운 채 말이야. 꽃이 핀 2개는 그냥 두고 5뿌리를 캤어. 쑥 잡아당기는 데 향이 진하게 올라왔어. 이게 봄의 향기구나 싶었지.


오늘 저녁은 냉이된장국 당첨!!! 냉이 5뿌리로 된장국을 끓이기엔 너무 적으니 집에 가는 길에 봄동을 한 근 샀어. 데친 봄동을 냉이와 함께 된장으로 조물조물한 뒤 육수에 풍덩 넣어 된장국을 끓였지. 씁쓸하면서 달달한 맛이 나는 봄국이 완성되었어. 엄마가 해 주는 거 잘 안 먹는 둘째도 된장국을 달라고 하더니 훌훌 떠서 먹더라고. 봄나물은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나 봐.


봄이 되니 텃밭에 뭘 심고 싶어지네. 이런 마음이 어딘가에 닿았을까? 회사 동료가 이번에 솔깃한 얘기를 하나 해 주는 거야. 달래 있잖아, 달래의 뿌리 부분만 잘라서 땅에 심어 놓으면 달래가 계속 자란다는 거지. 그래서 시장에 가서 달래 두 묶음을 사서 뿌리를 댕강 잘라 땅에 심어 보았어. 잎은 달래를 좋아한다는 동료에게 안겨 주었지.


그러고 하룻밤, 이틀밤, 사흘밤 뒤에 가서 보니  잎이 1센티 이상 올라와 있는 게 보이는 거야. 식물의 생명력이 놀라웠어. 3일에 1센티미터씩 자라면 한 달 뒤면 시장에서 파는 달래만큼 자라 있을 거잖아. 그치?


겨우내 사람 손길 한 번 안 거치고, 추운 바람과 눈을 맞으면서도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워 낸 냉이도 놀랍고, 뿌리만 남은 상태로 땅에 의지해 3일 만에 잎을 위로 올려 보내는 달래도 놀랍지? 식물의 힘일까? 봄 기운의 힘일까?


한 달 뒤 달래를 수확하게 되면 달래장을 만들어 계란밥에 쓱쓱 비벼 먹을 예정이야.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꼭 달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뿌리만 남아 있던 달래가 이렇게나 잎을 길게 키워냈다는 이야기를 말이야. 달래를 먹은 너희들도 달래처럼 너희들의 능력을 맘껏 펼쳐 보길 바란다는 희망도 함께 담아서. 너희들은 아직 봄을 살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도 냉이 이야기를 해 주지 그랬냐고? 당연히 이야기했지. 그걸 놓칠 내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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