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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16. 2023

[공개 일기] 목요일: 5살의 그리움

저녁을 먹은 뒤 식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푸름이와 초록이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둘이 같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신기하기도 해. 5살과 14살이 동등한 주체가 되어서 대화를 하는데 난 그 모습이 너무 웃겨.


초록이는 이번에 수료한 어린이집 졸업 사진을 보며 형에게 말하고 있었어.


"나 여기 어린이집 가고 싶어."

"A 어린이집? 너 여기 이제 평생 못 가."


"가고 싶어."

"여기는 4살까지밖에 없어. 다 동생들이야."


"그래도 가고 싶어."

"그래? 그럼 아빠한테 내일은 여기 어린이집에 가자고 그래 봐."


"아빠한테 말했어."

"아빠가 안 된다고 그러지?"


"응. 아빠가 자꾸 내 말을 안 들어. 계속계속 B 어린이집에만 데려다줘."

"그래 A 어린이집은 못 가는 거야."


자기도 어린이면서... 아니 이제 청소년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동심을 파괴하는 푸름이와 꽤 진지한 초록이의 대화를 듣는데 왜케 웃긴지 난 혼자 조용히 웃었어. 그러다 마지막에 '아빠가 자꾸 내 말을 안 들어.' 하는 초록이의 말을 듣고는 얼른 방으로 숨어 들어갔지. 진지한 이 말이 난 너무 웃긴 거야.


사실 저번 주에도 한 번 초록이가 A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어. 친구들이 보고 싶다면서 말이야.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내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 A 어린이집에 다닐 때 엄마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기에 전화번호를 아는 엄마가 없는 거야. 전화번호가 있다면 주말에 약속이라도 잡아보겠는데...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어.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면 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겠지 했는데, 오늘 또 이렇게 그리운 마음을 드러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 물론 아이가 하는 표현이 재밌어서 키득키득 웃긴 했지만.


내일은 아빠와 A 어린이집을 한 바퀴 돌고 B 어린이집에 등원하기로 했어. 이렇게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지 안 그러면 초록이가 병이 날 것만 같아.


5살 아이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은 그곳과 그곳에서 같이 논 친구들. 뒤집기만 겨우 할 때 만나서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주장하게 된 5살 초반에 헤어졌으니 인생의 큰 변화를 같이 겪은 끈끈한 동지애가 생겼나 봐.

 

어쩌면 그 공간과 그 친구들은 초록이의 또 다른 우주였을지도 몰라. 아 이렇게 생각하니 5살 아이의 그리움이 마흔 살이 넘은 내 그리움보다 더 크게 느껴져. 아.. 반성모드... 나 아까 웃은 거 취소할래.


내일은 초록이가 그곳을 지나가다 선생님이라도 만났으면 좋겠어. 운이 좋으면 A 어린이집 근처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아~~  생각만 해도 설렌다.

초록이가 그럴 수 있기를 같이 기도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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