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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01. 2023

학폭: 우리는 희망을 보고 싶었다

사춘기의 시작

일요일 저녁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던 시간, 초록이와 한강에서 노는 걸 마무리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방에서 전화기의 진동이 느껴졌는데, 초록이 킥보드를 밀어 주느라 확인해 보지 못했다. 진동이 멈췄다 싶었는데 또 울리길래 잠깐 멈춰서 전화기를 꺼냈다. 푸름이 친구 엄마의 전화였다.


건너건너 들었는데, A라는 아이가 푸름이를 B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A가 푸름이 친구를 다 보낸 뒤 푸름이만 데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간 것 같고 헤드락을 하는 등 아이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어서 푸름이를 찾아보라고 한다.


서둘러 푸름이에게 전화해 보았다. 받지 않았다. 위치 추적을 해 보았지만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인지 위치 추적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너무 두려웠다.


A는 푸름이 친구였다.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우리 집에도 한두 번 왔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서 멀어졌다. 간간이 A의 만행이 풍문으로 들렸다.


내 폰에 A의 번호가 저장돼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A와 통화가 안 되면 A의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A는 전화를 받았다. A는 처음에 푸름이를 오전에 만났다고 하다가 내가 둘이 있었던 상황을 알고 있는 듯하자 푸름이하고 6시쯤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알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 집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하니 푸름이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촉촉한 머리를 보니 샤워를 한 모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맞이하는 푸름이를 보고 살짝 안도했다.


친구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내며 푸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푸름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가 묻지 않았다면 푸름이는 그냥 넘어갈 생각인 듯했다. 푸름이는 물을 때마다 하나씩만 말해 줄 뿐 계속 숨기려고만 했다. 계속 추궁하자 퍼즐이 하나씩 맞춰졌다. 아... 나는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보다 추궁하며 사실을 알아내는 게 급했다.(푸름이를 재우고 나서야 내가 푸름이 마음을 제대로 달래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ㅜㅜ)


B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갔는데,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겠으며, A와 A 친구 5명과 본인 혼자 그곳에서 1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1:6인 상황에서 A가 싸우자고 했고, 푸름이는 일방적으로 맞았다. 덩치 차이가 나는 데다가 A 친구가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 싸움 자체가 되지 않았다. A는 푸름이에게 무릎을 꿇라고 했고 푸름이는 꿇지 않겠다고 버텼다. A는 푸름이에게 계속 헤드락을 했고 넘어뜨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푸름이가 신고하겠다고 말했더니 A가 갑자기 화해하자고 말하고는 떠났다. 푸름이는 한동안 지하 주차장에 누워 있다가 집에 왔다.


푸름이의 이야기를 듣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까,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참고 버텼을까? 푸름이도 말을 하면서 울었다.


A를 어떻게 만났냐고 묻자, 푸름이와 친구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A가 푸름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찾아왔으며, 지하 주차장으로 따라오라고 한 뒤 푸름이의 친구들을 모두 보냈다고 한다. A는 푸름이 친구들을 향해 "너희들 중 내 욕 한 적 없는 애들은 가도 좋아."라고 말했고, 푸름이 친구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푸름이 친구들에게 A는 두려운 존재였다.) 푸름이는 본인만 두고 떠난 친구들이 배신자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친구들이 모두 가 버린 상황에서 푸름이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A가 푸름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찾아온 건, 푸름이가 친구들과의 톡방에서 A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친구들과의 톡방에 딱 한 마디 A에 대해 말을 했는데, 그 말이 A에게 전달이 된 것인지, A가 그 톡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A는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걸 참을 수 없어 했고 그런 말을 하는 아이를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좋게 표현해서 사과다)


그 아이가 푸름이에게 무릎을 꿇게 한 것도 아마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작용해서인 듯하다. 푸름이는 팩트를 말했을 뿐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이었기에 죽어도 무릎을 꿇지 않아서 더 맞았다고 한다.


턱과 팔에 멍이 들었고, 목 쪽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무서움에 떨었고, 친구와의 관계도 흔들렸으며, 어떻게 바깥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A를 다시 만날까 봐 두려워했다.


너무 속상해서 A에게 전화했다. 힘이 세다고 누군가를 함부로 때려도 되는 건 아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 A는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네가 네 부모에게 소중한 아들이듯이 푸름이도 우리에게 소중한 아들이다, 이번 일로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말도 같이 전했다. A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이틀 뒤 푸름이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A의 중학교에 A가 푸름이를 폭행한 일이 신고되어서 A의 중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연락이 왔으니 같이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푸름이는 또 불려 가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적었다. ㅜㅜ


다음 날 생활지도부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진행 절차에 대해 알려주시면서 학폭으로 갈 수도 있고, 학교장 종결로 처리할 수도 있는데, 부모님 의견은 어떤지 물었다. 이번에는 A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으니 학교장 종결로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전치 2주의 진단서가 있다고 하니, 전치 2주 이상의 진단이 나오면 학교장 종결로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학폭으로 가야 하고,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고 학교장 종결로 끝나면 다음에 A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이 진단서는 효력이 없다고 했다.


고민이 됐다. 남편은 A가 아직 어리니 학교장 종결로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푸름이도 학교에 같은 입장을 제출했다. 우리 가족은 A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었기에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A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A 엄마는 단순히 둘이 싸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푸름이가 사과를 안 해서 둘이 싸웠는데, A가 덩치가 커서 푸름이가 더 다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A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화가 났다.


친구들끼리 누구 욕을 조금 했다는 이유로 보복하고 무릎을 꿇게 한 게 정당한 행위인지, 사람들 눈을 피하려고 지하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는 건 알고 있는지, A가 푸름이 친구들을 모두 보냈고 본인의 친구 5명이 있는 상황에서 푸름이에게 싸워 보자고 했는데 이걸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드락을 계속 걸었는데 그건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는지, 아이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생각해 봤냐고 따졌다.


A 엄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듣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A가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 듯했다. A 엄마는 거듭 사과를 하며 푸름이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계속 비쳤다. 화가 났던 내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나 또한 같은 엄마 입장에서 A 엄마가 이번 일로 얼마나 가슴을 졸일지 알기에 이 정도 선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A 엄마에게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렸다. A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으니, 이번 일로 학폭까지 가지 않도록 하겠지만, A가 계속 반복되는 행동을 하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시켰다. 학폭 외에도 민사 소송, 형사 고발 등의 다른 루트가 있고 우리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루트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전했다. 이 사실을 A가 꼭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았다. 다음 날 푸름이가 학부모 확인서를 전해 주길래 빈칸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날의 일을 계속 복기하는 것도 힘든데, 용서가 안 되는 마음으로 피해 상황을 복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 본다.


푸름이의 사적 영역이 많이 침해되었고, 존엄성도 많이 훼손된 상태다. 이 부분을 어떻게 채워 줘야 할지 고민이다. 이번 일로 얻은 게 있다면, 푸름이에게 엄마는 자기편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다. 푸름이가 친구 험담을 할 때 푸름이 편을 들어주기보다 푸름이 친구 대변자가 되곤 했는데, 푸름이는 그걸 많이 서운해했다. 푸름이는 이번에 100프로 자기편이 돼 준 엄마에게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사소한 일에도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난 왜 그동안 심판관이 되려고만 했던 것일까? 푸름이에게 미안했다.


하나 더, 이런 일을 부모에게 말하면 본인은 찐따가 되고, A에게 더 큰 보복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푸름이는 알게 되었다.

푸름이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 너와 내가 한 팀이 되어야 한다. 그 아이와 네가 한 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너와 내가 한 팀이 되면 우리의 힘이 커지고 그 아이와 네가 한 팀이 되면 그 아이의 힘이 커진다. 우리의 힘이 커지면 그 아이도 너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네가 그 아이에게 복종하면서 그 아이와 한 팀이 되면 그 아이는 이전보다 너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날 이후 6일의 시간이 지났다. 벚꽃이 만개한 오늘, 푸름이는 그날 자신을 두고 떠난 친구들을 만난다며 나갔다. 그날 그 친구들이 푸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간 뒤 죄책감에 많이 시달렸으며, 푸름이가 잘못될까 봐 걱정돼서 많이 울었다는 사실을 푸름이가 전해 듣고는 마음이 풀린 모양이었다. A를 만날까 봐 A가 있을 만한 곳을 자꾸 피하는 것만 빼고 다른 부분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다행이다, 일상을 회복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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