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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22. 2023

반성문을 들고 왔다

사춘기의 시작

푸름이가 또 반성문을 들고 왔다. 엄마가 한마디 하기 전에 먼저 실드를 친다.

"아... 정말 우리 선생님 너무 깐깐해요. 아 글쎄...."


자세히 들어보니, 푸름이는 선생님이 2~3학년 교실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2학년 교실 쪽으로 가서 논 것, 2학년 누나에게 '예쁘다'고 외모 평가를 한 것 때문에 반성문을 쓴 것이었다.


"아니 왜 안 돼요? 왜 2학년 복도에도 가면 안 돼요? 그리고 예뻐서 예쁘다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반성문을 썼으면서도 왜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선생님께서 아마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해 주셨을 텐데, 한 귀로 흘린 모양이다.


"2~3학년 선배들을 1학년 교실에 못 오게 하고 1학년 학생도 2~3학년 교실에 못 가게 한 건 1학년인 너희들을 보호하려는 거야. 만약 1학년은 2~3학년 교실에 가도 된다고 하면, 그걸 악용하는 선배들이 있을지도 몰라. "몇 시까지 우리 반 앞으로 와!" 이렇게 협박하는 선배가 있을 수도 있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일 거야."


"그건 이해가 돼요. 근데 왜 예쁘다고 말하는 게 안 돼요?"

"예쁘다고 말하는 게 되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야 해. 친구한테 '못생겼다'라고 말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알고 있지?


"네."

 "외모 비하하는 게 안 되면 외모 찬양하는 것도 같이 안 돼야 맞는 거지. 그래서 둘 다 못하게 하는 거야. 일단 외모 평가 자체는 옳지 않아."


푸름이는 고개는 끄덕끄덕했지만, 왜 이리 규칙이 많은지 짜증이 좀 난 듯하다. 엄마가 이전에 말해 준, 규범 안에서 너의 주장을 펼치는 똑똑한 아이가 되어 보자는 말도 한 귀로 흘린 것 같다.


이것 외에도 규칙이 여러 개 있는 듯했다. 그중에는 내가 설명해 주지 못하는 규칙도 있었다.

'고백 금지'

이 규칙이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를 알면 푸름이에게 설명해 줄 텐데, 왜 생겼는지를 모르니 푸름이에게 설명해 줄 수도 없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아마 이런 규칙이 있다면 당연하게 여겼을 텐데, 요즘 세상에 이런 규칙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거야. 공부하는 애들이 무슨 연애질이야. 공부나 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선생님이 계시던 그 시절에나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이 2023년 중학교를 다니는 푸름이에게도 적용이 되다니.


'공개 고백 금지'려나?

알 수 없다.


"엄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변화가 많아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변화가 많아요?"

"무슨 변화?"


"규칙이나 벌점 그런 거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변화가 더 크겠지?"


"다행이네. 아.. 진짜 뭐가 이리 많아 진짜."

푸름이는 혼잣말을 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3월 중순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중학교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푸름이는 여기서 부딪치고 저기서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반성문도 벌써 두 번째다. 휴...


규칙을 부딪쳐 가며 배우는 아이와 규칙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하는 아이.

학교 입장에서는 후자가 편하겠지? 울 푸름이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학교 선생님도 푸름이를 지도하느라 힘드실 것 같다.


친절하게 푸름이가 납득이 가게 규칙을 설명해 주는 분이 계시다면 푸름이가 믿고 따를지도 모르겠지만, "규칙을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벌점을 받거나 반성문을 써야 한다"라고만 하면 푸름이의 반항심만 키울 텐데...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푸름아... 너의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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