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06. 2023

스마트폰 사용 무제한

스마트폰 전쟁

2023월 4월 만우절 다음날, 이제까지 쥐고 있던 스마트폰 통제를 대부분 다 풀었다.

하루에 2시간만 사용 가능했던 휴대폰 시간을 '한도 없음'으로 수정하고, 한도를 설정해 놓았던 앱들도 모두 '항상 허용'으로 수정하였다.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다운타임'으로 설정해 놓았던 것만 그대로 두었다.


"얘들아 엄마가 이제부터 휴대폰 사용 시간을 무제한으로 해 줄 테니까 맘껏 써 봐. 게임도 마음대로 해도 되고, 영화도 마음대로 봐도 돼. 돈 주고 게임 시간이나 핸드폰 사용 시간을 안 사도 돼. 용돈은 그대로 줄게."


애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에서는 게임 시간을 5분에 100원을 주고 사야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게임도 평일엔 안 되고 주말에만 할 수 있었다. 하루 2시간 휴대폰 사용 시간이 끝나면 10분에 100원, 최대 1000원어치만 사서 쓸 수 있었다. 이렇게나 규제가 많았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규제가 풀리니 당황할 수밖에.


"단, 일상생활은 잘 유지해야 해. 방바닥이나 침대에 과자봉지이나 부스러기를 그대로 떨어뜨려 놓은 채 휴대폰만 한다거나, 옷무덤을 만드는 행위, 식음을 전폐하고 휴대폰만 보고 있는 행위, 이런 건 안 돼. 즉, 먹고, 자고, 싸고 플러스 나를 돌보는 행위가 잘돼야 해. 휴대폰을 침대에서 쓰는 것도 안 돼. 해먹에 누워서 하는 건 되지만, 방 침대에서 쓰는 건 안 돼. 이것만 잘 지켜 줘."


휴대폰을 침대에서 쓰지 못하게 한 건, 혹시나 아이들이 주말이나 방학 때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서였다.


"이렇게 열어 줬는데, 일상생활이 잘 안 된다. 그럼 그게 제대로 될 때까지 휴대폰을 잠글 거야. 밤에 자기 전에는 항상 방을 정리했으면 좋겠어. 아침에 엄마가 문을 열었는데, 방이 엉망이다. 그럼 바로 잠글 거야."


애들은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휴대폰 사용 무제한이라는 큰 물고기를 잡았으니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나는 또 파격적인 제안을 또 했다.

"이제부터 집안 청소는 1주일에 한 번만 하면 돼. 1주일에 1번만 제대로 하면 엄마가 청소하는 비용으로 줬던 용돈 그대로 줄게."


아이들 용돈은 지금까지 몇 단계 수정을 거쳤다. 중1 푸름이는 일주일에 7000원, 중3 맑음이는 일주일에 9000원을 받았는데, 올초에 용돈 체계를 조금 바꾸었다. 매일 청소를 했을 경우 푸름이는 일주일에 10500원, 맑음이는 일주일에 12500원을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청소를 전혀 안 하면 기본 용돈인 3500원, 5500원만 받고, 청소를 드문드문했을 경우 기본 용돈에다 '청소한 횟수*500'을 더해서 받기로 했다.


청소를 일주일 했을 때와 6일 했을 때의 비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이들은 힘들어도 꾸역꾸역 청소를 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이걸로 협박을 했다. "지금 청소 안 하면 용돈이 확 줄어든다 어서 해라!" 이 말을 저녁마다 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용돈 계산 방식은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삶에 우연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은데, 청소를 하루라도 빼먹으면 큰 손해를 보게 만들어 놨으니...  아이들은 힘들어도 매일 폴더 매트를 접었다 폈다 했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청소기를 돌리는 날도 많았다. 이런 마음으로 청소를 하니 꼼꼼하게 청소할 리 만무했다.


"이제 하루만 청소해도 되고, 한 번 청소하면 7000원을 받는 거니까 구석구석 청소해 주길 바랄게. 너희 둘이 2~3일 간격은 유지해서 청소를 했으면 좋겠어. 일요일부터 토요일 사이에 딱 하루만 청소하면 되는 거야."


아이들이 매일 하던 청소를 하지 않으니 집은 전보다 지저분해지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매일 퇴근해서 아이들에게 '청소해라, 정리해라'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은 방법 같았다.  만약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하기로 한 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용돈을 줄 때 7000원을 빼고 주면 된다. 매일 청소 문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감정 상하는 일도 없을 듯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휴대폰 사용 무제한에다 집안 청소 횟수까지 줄어든 날~~  아이들은 계라도 탄 듯 신나 했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듯 스마트한 세상으로 들어갔다.


난 왜 갑자기 이런 다소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렸을까? 오랜 시간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통제하는 데 지치기도 했고 최근에 푸름이가 엄마의 구글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마음껏 스마트폰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내가 지금까지 맞는다고 여겼던 방식에 회의가 찾아왔다. 도덕적 감수성은 내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체험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니 나와 같이 사는 동안 아이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도덕적 감수성을 기를 기회를 주기로 했다.




휴대폰을 무제한으로 열어준 지 나흘이 지났다. 첫날은 일요일이어서 휴대폰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푸름이는 의자에 앉아 눈이 아플 정도로 영상을 보고 게임을 했다. 패밀리 링크 앱으로 애들이 휴대폰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확인해 보니 푸름이는 무려 10시간을 사용했다. 맑음이는 중간에 학원 보강이 있어서 다녀오느라 7시간 정도 휴대폰을 사용했다.


푸름이 사용 시간


맑음이 사용 시간

그 다음 날은 학교에 가는 날이기에 휴대폰 사용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휴대폰 보는 데 썼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얼마나 좋겠니. 맘껏 누려 봐. 러다 보면 너희들 스스로 조금씩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겠지. 엄마와 같이 살 때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해 보는 게 낫겠지?'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 시간과 앱 사용 패턴을 매일 확인해 보니, 휴대폰을 무제한으로 열어줄 때와 규제를 했을 때 앱 사용 패턴 변화가 뚜렷하게 보였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규제했을 때, 푸름이는 영화를 보는 시간이 가장 많았고, 맑음이는 웹툰을 보는 시간이 가장 많았는데, 규제를 풀어주니 푸름이는 게임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고, 맑음이는 틱톡 보는 시간이 많았다.


다른 앱은 다 잠가도 좋은데 웹툰만은 '항상 허용'으로 해 달라던 맑음이였는데, 휴대폰 사용 시간을 무제한으로 바꾸니 웹툰을 많이 보지 않았다. 영화 감상을 좋아하는 푸름이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


너희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게 뭐니? 규제 속에서 나오는 게 진짜 욕망인 거니? 자유 속에서 나오는 게 진짜 욕망인 거니?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잘하고, 나에게 다른 방식을 요구하지 않는 한,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을 그냥 지켜볼 예정이다. 규제 없이.

매거진의 이전글 학폭: 우리는 희망을 보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