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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20. 2023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스마트폰 전쟁 기록 2

2022년 11월 13일의 기록


토요일 아침

푸름이는 식탁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마음에 드는 반찬이 없는지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 볶음밥을 꺼내 밥을 볶는다.


푸름이가 볶음밥을 하는 현장은 화려(?)하다. 냉동 볶음밥 비닐과 가위가 옆에 그대로 놓여 있고 프라이팬에 붓다가 흘린 냉동 밥알들이 가스레인지 위에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다. 계란은 꼭 그릇에 깨뜨린 뒤 프라이팬에 옮기기 때문에 계란을 깨뜨린 숟가락과 계란을 담았던 그릇도 그 옆에 널브러져 있다. 가스레인지 주변에는 볶음밥을 볶으면서 프라이팬 밖으로 넘어간 밥알들이 사이좋게 뭉쳐져 있다.


푸름이는 접시에 볶음밥을 담은 뒤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떠난다. 누가 봐도 무슨 볶음밥을 어떻게 해 먹었는지 딱 보이는 현장을 그대로 둔 채 말이다.


"요리한 뒤에는 정리를 해야지. 원래 요리하면서 정리도 같이 하는 거야."

"먹고 나서 할게요."


푸름이는 밥을 다 먹은 뒤 옷을 챙겨 입더니 백화점에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한다. 백화점에 왜 가느냐고 물으니 "있어요."라고 말하며 신발을 신는다.


볶음밥 요리 현장은 그 상태 그대로다. 여기서 내가 한마디 하면 싸움이 된다. 정리하고 가라고 하면 갔다 와서 할 거라고 말하겠지. 그럼 나는 지금 하고 가라고 하겠지. 푸름이는 정리를 한 뒤 문을 쾅 닫고 나가거나 정리도 안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고이 푸름이를 보낸다. 언제 올 거냐고 물으니, 모르겠다며 나간다.


오후가 되자 햇볕 쨍쨍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간 푸름이가 걱정됐다. 비가 멈추면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더 거세지기만 한다.


저녁 시간이 다 됐는데도 푸름이가 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배고플 텐데,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백화점에 가서 푸름이를 찾아볼까 하다가 초록이 때문에 더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일단 기다려 본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걱정되는 마음을 누를 수 없어서 푸름이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해 보지만 푸름이는 받지 않는다.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서야 푸름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왜 전화했어요?"

"걱정돼서 했지."


"푸름아 어디야."

"백화점이에요."


"언제 올 거야?"

"조금 이따 갈게요."


"배고프지 않니?"

"괜찮아요."


"8시 전에는 출발해야 해."

"네."


잠시 뒤 푸름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자전거 타고 못 가겠어요."

"자전거는 내일 찾으면 되니까 버스나 지하철 타고 와."


"교통카드가 없어요."

"체크카드도 안 가져갔니?"


"체크카드는 있는데, 카드에 돈이 없어요."

"돈이 없어도 교통카드는 돼. 성인 요금 찍혀도 되니까 그냥 타고 와."


"네."

"엄마가 마중 나갈 테니 지하철 타고 전화해."


오늘따라 낮잠을 자지 않던 초록이는 저녁을 먹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푸름이를 데리러 가는 동안 초록이가 깰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몰라 맑음이에게 초록이를 부탁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우산을 썼는데도 소매와 바지가 다 젖었다. 빗속을 뚫고 걷느라 진동이 울리는지도 몰랐는데 도착해서 전화기를 보니 푸름이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지하철을 탄 뒤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푸름이에게 전화하니 받지 않는다. 지하철 승객들이 다 나온 듯한데 푸름이는 보이지 않는다. 2정거장만 오면 되는데... 올 때가 됐는데... 나는 또 불안해진다.

몇 대의 지하철을 보내고 나니 반대편에서 푸름이가 온다.


"왜 거기서 와?"

"급행인 줄 모르고 탔다가 멀리까지 갔어요. 다시 돌아오느라 늦었어요."


"아이고야... 그나저나 백화점에서 뭐 한 거니? 배는 안 고프니?"

"전자제품 파는 곳에서 헤드셋 끼고 유튜브 봤어요."


"엥?"

"거기 컴퓨터랑 노트북 써 보라고 돼 있는 데 있잖아요. 거기서 유튜브 좀 보다가 서점에 가서 책 좀 보다가 마트 시식 코너 돌았어요."


"재밌었어?"

"시식 코너를 10번 돌았더니 아줌마가 가출했냐고 물었어요."


"가출한 아이로 보일 만하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가출한 게 아니고 외출했다고 했죠."


하아.. 말이라도 못하면....

전자제품 파는 데서 유튜브 볼 생각을 어떻게 한 걸까? 연초에 내 노트북을 사러 간 날 거기서 나를 기다리며 신나게 유튜브를 봤던 경험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지 거길 혼자 갈 생각을 하다니...


마트 시식 코너를 돌 생각은 또 어떻게 한 걸까? 배가 고프면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게 정상 아닌가? 용돈도 다 쓰고 없으면서 마트에 갈 생각은 어떻게 한 건지... 그래도 쫄쫄 굶지 않고 뭔가를 챙겨 먹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푸름이를 생각하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하다. 푸름이는 항상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을 한다. 엄청난 능력자다. 하루에 스마트폰 사용 2시간이라는 족쇄가 푸름이를 백화점으로 이끈 것일까? 그렇게 영상이 보고 싶었나? 그렇게 게임이 하고 싶었나? 족쇄를 풀어야 하나? 지금 이 족쇄가 푸름이에게 멋진 세계를 안내할지, 이상한 세계를 안내할지 나는 모른다. 족쇄를 풀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양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푸름이는 자전거를 찾아오겠다며 또 백화점에 갔다. 언제 올 거냐고 물으니 바로 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푸름이는 오지 않았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고민을 말했더니, 백화점보다는 집이 안전할 테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지 말고 집에서 편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하란다. 단 방이 아닌 거실에서 하는 걸 약속해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은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분명히 방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하려고 할 테고, 나는 아이가 방에 들어가면 또 감시의 눈이 될 것이다. 그럼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상황이 발생하고 또 싸우겠지? 아직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은 것 같다.


주말에 한 번씩 이렇게 백화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건 좀 더 지켜볼 생각이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고, 아이와 시간 약속을 제대로 하든 미션을 수행하도록 하든 해야겠다.


아.. 그나저나 이 걱정이 끝나면 또 새로운 걱정이 나를 찾아오겠지? 산을 넘었다고 안도하기도 전에 더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다.


Photo by Valentin Mül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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