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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19. 2023

나가요, 나가라고요

사춘기의 시작

푸름이 엄지발톱 주변이 또 말썽이다. 피부과에 다녀온 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요 며칠 연고도 잘 안 바르고 약도 잘 안 먹더니 오늘 급기야 발톱 주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푸름이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우선 약이라도 바르자고 했더니 짜증을 한가득 낸다.


"엄마는 알지도 못하잖아요.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병원에 가면 발톱 부분을 자르자고 할 거란 말이에요."

"병원에서 처치하는 거 그렇게 아프지 않아. 일단 병원에 가기 싫으면 약이라도 바르자."

"약 발라도 안 낫잖아요. 제가 알아서 해요."

"약을 발라야 염증이 안 생기지."

"언제부터 저한테 관심이 있었어요. 엄마 원래 저한테 관심 없잖아요."


할 말이 없다. 요즘 무슨 말만 하면 결론이 이렇게 흐른다. 관심 없는 엄마. 


"네가 남이어도 이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야. 발가락이 아파서 피가 나잖아."

"나가요. 제가 알아서 해요."

"약이라도 바르자."

"나가요. 나가라고요."

"푸름아."

"왜 갑자기 관심 많은 척해요. 나가요. 나가요."


이대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 발가락에 약을 바르고 싶은 마음에 계속 아이 방에 있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그 마음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아이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들었다. 이렇게 나갈 순 없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에게 엄마 말이 맞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가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었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싸워서 뭐하나, 아들한테 이겨서 뭐하나.


"그래. 알았어. 대신 네 몸은 네가 좀 잘 챙겨."


이 말만 남기고 아이 방을 나왔다. 식탁에 앉아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푸름이 발가락이 심각해져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안 가겠다네요. 오늘은 피가 많이 났다는데... 병원에 안 가겠다고 짜증만..."


남편은 일하다 말고 톡을 보냈다.

"가야지... 아빠가 가라고 했다고 그래."


아이고... 이 말이 통할 리가. 


나보다 힘이 센 푸름이를 힘으로 이겨서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식탁에 앉아 마음만 다스렸다. 이제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설득이 전혀 되지 않는다.


대화 좀 나누려고 하면 귀찮다고 하고, 뭐 좀 물어보면 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냐고 하고, 가만 놔두면 관심이 없다고 하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네 스스로 네 삶을 잘 살든지. 


'엄마는 네가 네 몸을 소중히 다루고 네 주변을 청결히 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이게 가장 기본이기에 이게 안 됐을 때만 너에게 잔소리를 하는 거야. 너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너를 지켜보는 거야.'


푸름이는 간식으로 핫도그를 두 개나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저녁을 차려봤자 왜 차렸냐고 짜증을 내거나 맛이 없는 거라며 안 먹을 게 뻔했다. 푸름이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밥은 자기가 알아서 먹을 테니 차리지 말라고 선언했었는데, 난 가끔 그 사실을 잊는다. 모른 척할 때도 많다. 


초록이 저녁을 먹인 뒤 푸름이를 그냥 둘 수 없어 나는 또 모른 척하고 저녁을 차렸다. 푸름이가 좋아하는 냉동김치볶음밥에 부추와 당근을 넣어 달달 볶았다.(엄마표 볶음밥은 맛이 없다며 거부한다. ㅜㅜ) 밥그릇에 김치볶음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접시를 대고 조심히 뒤집었다. 넓은 접시에 동그란 모양의 김치볶음밥이 깔끔하게 담겼다. 깨를 톡톡 뿌린 뒤 계란프라이를 반숙으로 해서 그 위에 얹고 소고기를 구워 접시 빈자리에 예쁘게 담았다. 푸름이는 이렇게 예쁘게 담긴 음식을 좋아한다.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다.


'똑똑'

푸름이 방 문을 두드렸다. 엄마가 저녁 준비 했으니 식탁으로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올 게 뻔했다. 이럴 땐 내가 지고 들어가야 한다. 푸름이를 식탁에 앉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푸름이가 저녁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걸 잊으면 또 싸움이 된다.


"엄마가 푸름이 저녁 준비했다."

"나가요. 안 먹어요."

"책상에 놓고 갈 테니 먹고 싶을 때 먹어."


이렇게 말하고 방문을 닫았다. 푸름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음식을 씹는 소리가 들린다. 

'먹어 줘서 고마워 푸름아' 이 말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엄마는 언제든 져줄 수 있어. 네가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다면. 하지만... 엄마도 가끔은 지친다. 



Photo by Ka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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