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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Jan 18. 2023

[육아에세이]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아이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입니다

정말 그랬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는 건강하게만 태어나자 하고 기도했다. 아이가 태어나서는 잘 먹고 잘 자기를, 쑥쑥 성장하기를 기도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면서부터는 걷다가 어디 다치지 않기를 노심초사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에는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동안 좋은 선생님에게 안전한 보살핌을 받기를 바랬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이제 유치원에 다니니 아이의 이름을 스스로 쓰기를 바랬고 자꾸 이상하게 연필을 잡고 쓰느라 비뚤비뚤한 글씨에 영 못마땅해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지금,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기를 원하고 50을 넘어서 100 단위 수의 덧셈과 뺄셈을 요구하고, 아침에도 빨리 일어나기를 바라고, 친구들과도 사이 좋게 지내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선생님에게도 예쁨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건강하기만 해다오’가 전부였던 그 마음의 나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 


아이가 4살 무렵, 침대에서 돌아다니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머리에 아무 문제만 없게 해 달라고. 그저 제발 아무 문제없게만 해 달라고.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갔고, 시간이 흘러 그 때의 내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마 전, 어떤 강연을 듣다 아픈 아이가 있는 엄마의 사연을 들었고, 다시금 나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그토록 바랬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건강’하기만 해 달라는 그 마음 말이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그 다음 스케쥴을 위해 재촉하고, 시간에 맞춰 준비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해서 그럴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독한 말로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했었다. 아이는 자기만 보면 화를 내는 엄마에게 얼마나 속상했을까. 며칠 전, 아이는 자기 때문에 화를 내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며 엄마와 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돌이켜보면 아이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나 혼자 내 성질에 못 이겨서 아이를 닥달했던 것이었다. 


내 안의 온갖 찌질함이 아이에게서 보여지는데, 어리석은 나는 아이에게서 보여지는 나의 그 꼴을 못 견뎌했다. 아이를 통해 비춰지는 내 답답한 모습을 못 견뎌서 나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었지만 그 화살은 아이를 향해 던져져 그 작은 온 몸으로 내가 던지는 화살을 맞고 있었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사과를 했다. 엄마가 어리석어서 네게 화를 냈다고, 너는 아직 어리니까 어른이 이해를 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씩 웃었다. 


참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나란 사람은 아마 엄마가 되는 시험이 있었다면 떨어졌겠지. 아예 시작부터,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만 부모가 된다면 그게 아이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고 좋으나 싫으나 내가 선택해서 된 엄마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이 ‘엄마’라는 역할에도 기한이 있는 것을 안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를 생각했을 때 잔소리꾼이 아닌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오케이. 


어렵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아이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말을 줄이고 품을 내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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