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첫날, 늦잠을 잤다

정신 낫자루 빠진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

by 솔트다움 박연희

"엄마 새벽 한 시에 깨워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며 모닝콜을 요청했다.


"그건 너무 일ㄹ... 응..."


설명해 뭐하랴. 그냥 적당한 시간에 깨우면 될 것을. '아이의 마음이 그만큼 설레고,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구나'라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들었다.


설레서 좀처럼 진정이 안 되는 초등학교 입학생, 유치원 입학생을 겨우 책을 읽어주며 재우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책상에만 앉으면 온전히 내가 되는 신기한 마법. 그날 밤도 의식의 흐름이 키보드 사이를 따라 흘렀다. 몇 시까지 라고 정한 시간도 없다. 그냥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까지,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그렇게 쭉쭉 뽑아내고 잠자리에 들면 한결 개운해진 마음에 잔뜩 피곤해진 몸뚱이가 푹 단잠을 잔다.


"여보!!!"


신랑이 나를 깨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냐며 타박을 하는 신랑한테 할 말이 없다. 다른 날도 아니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처음 등교하는 날 늦잠을 잔 것이다. 다행히 학교에 늦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바쁘게 준비해야 하는 그 상황이 좋아 보일 리 없다.


'와, 정신 낫자루로 빠졌네 정말..'


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참...




정신머리 없는 엄마에게 적응해가는 아이


학교 갈 준비를 바쁘게 하면서도 늦게 일어난 엄마를 원망하는 말 한마디가 없는 아이. 그래서 더 미안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도록 만든 나라는 엄마, 참 못났다. 일도 아이들 케어도 야무지게 잘하는 그런 프로페셔널이 왜 난 안되는 걸까. 하나에 꽂히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 내가 참으로 미련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지만 나라는 인간, 참 안 변한다.


첫째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도 준비물을 깜빡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문제를 미리 나눠준 받아쓰기조차 적혀있는 날짜에 맞춰서 연습을 시킨 날보다 연습을 시키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딱, 한 번씩만 쓰면 되는걸. 모범생 스타일이었던 아이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안 가져가도 당황하지 않았다. 세상 모범생 스타일인 아이가... 받아쓰기를 틀려와도 너무 많이 틀린 날만 빼고는.. 그냥 괜찮아 보였다. 괜찮을 성격이 아닌데...


아이는 그렇게 엄마의 정신머리 없는 부족함에 적응을 해 가는 것일까...

그게 더 싫은데...




"엄마 회사 다녀올게"

"엄마 시험 보고 올게"

"엄마 일해야 하니까 방에 들어오면 안 돼"


'일'이라는 것을 놓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험에 붙어서, 일이 잘 되어 기뻐하는 엄마와 함께 웃어주는 아이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 건지 궁금해졌다. 기쁨과 흥분에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붙들고 내 눈 안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이. 그러고 나서야 엄마의 웃음에 동조해주던 너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좋아하니까. 빤히 쳐다본 엄마 얼굴에 기쁨이 있어서. 그런 1차원적인 기쁨에 방방 뛰는 엄마를 보며 "와 정말 잘됐다"라고 말하는 아이. 뭐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상황이다.



아이가 먼저라며

아니, 난 '내'가 빠진 적이 없는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이다. 육아는 퇴사의 '핑계' 였다는 오만한 표현을 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 때문에 일을 놓는다는 사실을 용납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죽자고 일을 만들기 위해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짜 속 마음

가끔 신랑한테 그런 얘기를 한다.

"자기가 잘되면, 나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아무것도 안 하고 애들이랑 전시회 다니며 그림 살 거야. 방학 때는 애들 데리고 한 달씩 중국어나 스페인어 배우러 다녀올게."

"지금 그렇게 살아도 돼"

"지금은...."


엄마가 없으면 안 되니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내 아가를, 엄마만 있으면 다른 건 다 어찌 되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너를, 내 손끝에서 놓지 못해서 회사도 그만두고 옆에 있는 거면서. 네 옆을 지킬 수 없는 시작은 시작 조차를 거부하고 있으면서. 내가 먼저 인양. 내 일이 중요 한양. 얄팍한 자존심을 세운다. 그래야 네 옆, 이 자리에서도 당당히 자존감을 세우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없어지는 건 무섭고, 그 공포가 나를 네 옆에서 밀어내는 건 더 무서워서. 네 옆을 지키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죽어라고 벌이고 또 벌인다.


어쩌면 난 세상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맘 속 무서움이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이길 만큼.


이도 저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서 미련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나의 이 자리를 그저 정당화시킬 만큼. 용기가 없는 사람일 뿐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내 아가들이

그저 고마울 뿐...



입학축하해 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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