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하는 아이를 교문에서 기다리는 새내기 학부모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뭣도 모르는 새내기 학부모인 내가 정리한 학부모 업무는 1. 아이 친구 만들어주기 2. 일찍 끝나는데 학원도 안 다니는 내 새끼 공부 루틴 만들어주기 3.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갖게 해 주기
업무 수행을 위해 하교 후 놀이터로 갔다.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지만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는 처음 만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논다. 새로 생긴 단짝 친구와도 쿵작이 잘 맞아 보인다. 이만하면 시작이 좋다 싶다. 문제는 한. 도. 끝. 도 없다는 것. 점심때쯤 점심까지 먹고 하교를 했으니 배도 안 고프니 집에 갈 생각이 없다. 뛰어다니는 아이는 쌀쌀한 공기 따위 느껴지지 않겠지만, 친하지도 않은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몇 마디를 나눌 뿐 아. 무. 것. 도 못하고 시간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시간 강박이 살짝 있는 나는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하니, 친구 엄마가 도서관에 가려냐고 묻는다. 평소 같으면 도서관을 마다할 내가 아닌데 요 며칠 추운 날씨에 놀이터 보초를 서느라 미열이 나는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지라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도서관'은 일단 가면 아이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나의 ego가 내 몸뚱이를 질질 끌었다.
도서관에 들르고도 더더더 놀고 싶은 아이에게, 아니 그 상황에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규칙을 정하자
놀이터에서 실컷 노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하자. 놀지 않고 들어오는 날은 줄넘기를 하고 들어오자. 집에 와서 씻고 수학 문제집, 영어 집중 듣기 등 할 일을 먼저 하자. 책 읽기에 조금 더 힘쓰자.
누가 그러더라. 아이가 앞으로 길게 해야 하는 것들을 싫어하게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지금 부모가 할 일이라고. 알지. 안다. '그렇다고 마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를 말하는 엄마라니 나도 참...
그럼 어떤 규칙을 정해야 할까?
유태인 엄마들은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 "오늘은 어떤 친구를 도와주었니?"를 묻는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알면서도 실천해보지 못했음이 깨달아졌다.
새로운 규칙을 세워보자.
선생님께 질문해보기. 책은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읽고 나서 엄마랑 대화하기.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정해 보기. 배워보기로 결심한 것은 적어도 3개월은 엄마와 매일 해보기.
생각나는 대로 적고 나니 앞선 규칙보다 백배 어렵지만 아이의 성장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할 수 있을까?....
육아도 일도 나스럽지 않기로
난 참 성실하게 살아온 인간에 속한다. 성실한 것은 나쁘다 할 수 없지만 '모범생 콤플렉스'는 변해버린 세상에 어디 하나 쓸데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모범생 콤플렉스라는 것에 대한 나의 정의에 기인한다. 세상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규칙과 방법대로, 세상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따라 사는 것. '모범생'으로 산다는 것이 이러한 정의의 것이었다면, 그런 나스러운 모습에는 퇴로를 열어주자. 한 번에 버리겠다 장담이 안 되는 인간ㅠㅠ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에 대해 난무하는 정답 아닌 정답들에 귀 기울이기보다 내 아이에게 귀 기울이자 다짐해본다. 이제야 '내 아이의 속도에 맞게'라는 말이 조금 이해되는 듯하다.
일도 마찬가지, 세상이 말하는 트렌드보다 '나' 에게 귀 기울여 보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세상이 향해가는 목표를 향해 덩달아 욕심을 부리다가 버거워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나다움이 특별해지는 지점을 찾기.
육아하다 성장해서 일하다
육아의 매력은 이만큼 자라서 자칫 딱딱하게 굳어질 뻔 한 나의 시각에 다시금 '재해석'과 '성장'의 촉진제를 뿌려준다는 점에 있다. 육아하다 보니 어쩌다 몸?도 맘도 자라고, 간절함과 열정도 강해지고, 그릇도 인내심도 커지고. 그렇게 성장하는 나를 데리고 일을 해보니, 이전과 참 다르다.
무엇을 하든, 더 잘할 수 있다. 세상의 인정이 그립지만, 풍족해진 마음과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