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집

이사 들어오시는 분들께

by 솔트다움 박연희

결혼해서 8년이 넘도록 살아온 집에서 작년 이맘때쯤 이사를 나왔다. 어색함 가득했던 신혼시절을 거쳐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의 시간들이 담겼던 공간을 떠나오자니 왠지 모르게 아쉬워서 잔금 날 조금 일찍 나와 이제 헤어지는 집에 들러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했다.


"좋은 일이 많이 있었던 집이에요"


축복받은 결혼, 귀한 아가들 둘, 신랑의 일터까지. 좋은 일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다 같이 웃고 감격에 울기도 했던 집. 마음 아파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왜 없었겠냐만 서도 집에게는 좋은 일들만 네 덕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아꼈던 집이었다.


"창밖에 보이는 산의 사계절 풍경에 그림을 따로 걸 필요가 없는 집이에요"


베란다 창 가득히 산이 보였다. 계절 바뀜이 눈앞에서 실감이 되는 덕에 가끔은 창밖을 넋 놓고 보곤 했었다. 아주 연한 초록색 잎이 돋아나고 진달래 개나리가 보이면 봄, 초록이 짙어지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여름, 노랑 빨강 갈색 단풍으로 알록달록 화려해지면 가을, 앙상해진 나무들을 일순간 흰 눈이 덮어서 하얘지면 겨울. 그렇게 베란다 밖 풍경으로 계절을, 시간의 지나감을 고스란히 느꼈던 집이었다. 층 수가 조금만 낮아져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놀이 공간이 있었던 집이에요"


아이들의 장난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우리 공간을 점령하기 시작하던 때, 친정엄마가 오셔서 보시고는 방수 돗자리를 사 오셨다. 하나를 사 오시고는 하나 더 필요하겠다며 굳이 또 마트에 가셔서 하나 더 사 와서 베란다 바닥에 깔고 장난감을 배치하시기 시작했다. 장난감이 많아지고 있는 게 안 그래도 싫은데 집 한 공간이 장난감을 본격적으로 인정한듯한 상황이 난 못내 서운했는데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첫째가 좋아하던 그 공간을 둘째가 태어나 덩달아 또 그만큼 좋아하고, 희한하게도 집에 놀러 오는 아이들마다 그 공간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다. 이사를 온 지금도 아이들은 그 베란다 놀이 공간을 기억하며 그 공간 때문에 전 집이 더 좋았노라고 자꾸 이야기할 정도이니 아이들에게는 가히 비밀스럽고 방해받지 않는 최고의 아지트였던 듯하다.


"복덩이들이 둘 씩이나 신생아 시기를 건강히 보냈던 곳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출산은 내게도 참 경이로웠다. 언제 '사람' 만큼 크는 거지 싶었던 인형 같은 신생아랑 둘이 서로를 키워가며 종일 아이를 안아 몸살이 날듯한 어깨죽지를 부여잡고 울기도 했던 그 장면, 그 공간이 아직도 고스란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귀하디 귀한 둘째였지만 금쪽같던 첫째가 혹여나 서운할까 하는 걱정에 둘의 첫 만남이 참 아렸던 안방 침대 위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찌 되었던 아이들이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또 그 집이 더 내 맘에 각별히 남았으리라. 내 마음까지 잘 보듬어 주었던 집. 그래서 아이들이 더 예뻐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이가 책장이 비워지도록 빼오던 책들을 읽고 또 읽어주던 시간들을 기억하는 집. 둘째를 만나기 위한 여정에 좌절하고 싶지 않아서 유산의 아픔들을 짧게 삼켜버렸던 그 마음들을 알고 함께 해준 집이라서, 아무도 모르는 그런 순간들까지 속속들이 묻어있는 집이라서 마음에서 더 천천히 놓아주고 싶었던 듯하다.




"좋은 일들만 있으실 거예요"


많이 웃고 감사한 일들이 가득하시기를, 행복 가득 담겼던 곳에 또 다른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마음 다해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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