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지옥육아와 이성렬의 <프리즘>

by 전새벽

아이 셋을 끼고 치열하게 육아하는 일상에서, 아내와 나는 종종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서로에게 말한다.

"왓 크라임 비포 라이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란 뜻이다. 대체 무슨 업보가 있길래 우린 이 고생을 하는 걸까? 하루종일 먹이고 치우고 똥 기저귀 갈고 우는 거 달래가며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체력이 바닥나 잠깐 누운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읊조리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운 뒤 다섯 식구는 차에 탔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나서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가족의 아침 루틴을 수행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첫째가 차에서 문득 얘기를 꺼냈다.

"산타 할아버지한테서 이것도 받고 싶고 저것도 받고 싶고..."

그러면서 말하기를, 선물 안 주면 꼬마 산타들을 혼내줄 거란다. 선물을 실제 제작하는 건 꼬마 산타들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유치원생의 순수한 발상이 귀엽고,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에,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식구들이 이렇게 많으니까, 비록 '비포 라이프'에 '왓 크라임'을 저지른 건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좋은 순간도 분명 있는 거라는 생각과 함께 슬며시 시 한 편 떠오르는 거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60년대 아주 추운 날 아침,


유담뽀를 안은 채 잠이 깬 내 머리맡에 놓인,


깊고 따듯한 주머니를 가진,


질기고 강한 고무줄을 두 겹 넣은,


내 다리보다 한 뼘이나 더 긴,


대바늘 사이로 수많은 한숨이 무늬를 새겨 넣은,


내 가슴 속 깊이 무지개의 화석으로 박힌,


지금 흐린 겨울 하늘에 갑골문자로 눈물겨운,


어머니가 뜨개질 부업에서 남긴 색색 털실로 짠,


총천연색 얼룩말 무늬 스웨터 바지 한 벌


-이성렬, <프리즘> 전문



유담뽀란 탄약통 등에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했던 수제 핫팩을 말한다. 난방도 안되고 핫팩도 수제로 만들어 쓰던 시기이니, '어머니가 뜨개질 부업'을 했다는 사실은 특별하지 않다. 그땐 누구나 가난했던 것이다.

<프리즘>은 '가난에 불구하고 사랑이 넘쳤던' 가족에 대한 드라마틱한 기억이 아니라, 그저 그 시절,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스웨터 바지에 대한 단상이다. 그럼에도 강하고 온화한 시어가 적절하게 뒤섞여 시인의 절실한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질기고 강한, 대바늘, 화석이 시인의 강한 감정을 보여주고, 무지개, 어머니, 총천연색, 스웨터가 그 시절의 따뜻한 기운을 그려낸다. 분명 이 기억은 질기고 강하며, 무지개 같은 것. 유담뽀의 온기처럼 뜨끈한, 그런 것.


돌이켜보면 모든 기억이란 사건/사물 중심에서 온도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어제 있었던 일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로 기억되는 반면, 십년 전의 일은 따뜻한 일이었는지 차가운 일이었는지만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건대, '왓 크라임 비포 라이프'로 대변되는 지금의 고통 역시, 돌이켜보면 똥기저귀와 난리부르스가 된 이유식으로 점철된 기억이 아니라, 가족이 그렇게 뭉쳐서 지지고 볶고 울고 웃었던 뜨끈한 기억으로 남을 것은 자명해 보이는데...


'왓 크라임 비포 라이프'는 작문 수업에서라면 빵점을 맞을 게 분명한 문장이다. 아마 원어민들은 '카르마(karma)'라고 표현할 거다. 카르마는 종교적 세계관을 다루는 용어로, 전생의 업보가 현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나타낸다. 한데 카르마란 죄와 처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카르마는 동시에, 전생에 잘한 일이 너무나 많이 지금 축복 받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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