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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와요

이은규의 시 <달로와요>에 부쳐

by 전새벽


시 읽고 글 쓰는 작업을 하다보니 갖은 오해들을 접할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오해로 시를 암호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중요한 정보가 담긴 텍스트가 있고, 그걸 특정한 규칙에 의해 재배열해 암호화하면 시가 된다는 생각. 그들에게 시 읽기는 복호화에 지나지 않는다. 암호화와 복호화라. 하나의 재밌는 발상이긴 하지만, 시를 힘 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되어주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복호화된 결과에 점수를 매기는 태도는 아쉽다. 다음 중 밑줄 친 부분에 대해 시인이 의도한 바는? 그런 류의 문학감상 시도는 오히려 문학을 자꾸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 여러 가능한 답변 중에 오늘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시가 결국 말을 가지고 하는 놀이라는 것이다. 앗, 놀이라뇨? 그렇다면 왜 굳이 시를 배우고, 힘들게 쓰고, 학교에서 그걸 배우느라 머리를 싸매고, 진지하게 평론을 하고 앉아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잠깐 숨을 고르고, 인류가 발명한 놀이들이 얼마나 진지한 문화/산업/역사가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놀이라고 해서 진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님을 금세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놀이와는 거리가 먼 시도 많다. 처절하게 싸우고, 떠나갈 듯 울고, 치열하게 머리를 쓰는 좋은 시도 많다. 나도 그런 시를 읽을 때 즐겁다. 하지만 놀이로 접근한 좋은 시를 만날 때는 더 즐겁다.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문학을 탐닉할 수 있어서 말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처럼.




달로와요 / 이은규


모퉁이를 돌아 달로와요 제과점을 지날 때

오늘의 달은 몇 시에 뜹니까, 달빵은 언제 나올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 떠 있을 달로와요


달에 구름이 머물면 달빵의 부스러기

달빵을 나눠 먹다 올려다본 어둠에 눈이 멀어도 좋았을,

우리 달빛의 촉수만으로도 알맞던 그 밤


어느 천문학자가 아픈 연인을 위해 달의 부스러기를 훔쳤다

깊은 무모함의 미신, 오래된 기침은 흰 봉투에 든 달을 한입에 털어 넣었을 것

창백한 새벽의 가루약처럼

달은 어둠의 부분입니까, 전체입니까

부분과 전체를 넘어 배후가 있을 뿐입니다

달의 뒤편으로 사라진 사람을 위로하지 말 것


달 표면이 뼈처럼 말라 있다는 기록을 읽다 뼈의 실루엣,

한 줌 재가 된 세계를 추억하지 말 것 달은 잿빛 얼굴입니까, 재입니까

사라진 연인의 안부가 차오르다 기울다


달로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연인은 일종의 배후이니까

날마다 달빵의 부스러기를 서로의 입술에 묻힐 수 있는

그곳으로, 어느 날 제과점 모퉁이를 돌다 밤의 눈을 찌르고 싶을 때

달빛의 촉수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시에 등장하는 '달로와요 제과점'은 실존하는 명소다. 1682년 프랑스 루이 14세가 한 파티에서 어떤 빵을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그 빵을 구워낸 사람이 샤를 달로와요(Charles Dalloyau)였다. 달로와요는 이후 왕실 전문 베이커리를 맡게 된다.


이 헤리티지를 가지고 달로와요 빵집은 현대까지 진화해오며 오페라 케이크 등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국내에는 신세계 강남점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이은규는 샤를 달로와요라는 외국 이름을 '달로 오세요'라는 모국어의 유혹으로 능청스럽게 전환시킨다. 뿐만 아니라 달, 촉수, 연인, 안부, 입술과 같은 시어들을 뭉쳐 애틋함을 그려낸다. 달에게 뒤편이 있는 것처럼, 아픈, 창백한, 가루약, 뼈 같은 시어들을 나열해 애틋함의 이면으로서 서늘함도 함께 배치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그 결과 '달로와요'라는 시는 어둠으로부터 도망쳐 안전한 달의 뒷면에서 연인과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고 싶은 자의 직설적이고도 달콤한 고백이 된다. 그러나 어떤 멋진 수사로 이야기하든, 이 시의 본질은 결국 말로 하는 놀이다. '날마다 달빵의 부스러기를 서로의 입술에 묻힐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노래하는 것도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샤를 달로와요를 '달로 오세요'라는 촉촉한 초대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시인의 엉뚱한 면에 있는 거니까. 그리고 시를 접한 어느 배 나온 아저씨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퇴근길엔 예쁜 빵집에 들려볼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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