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장성숙의 산문집, '그래도 사람이 좋다'(나무생각, 2001년)를 다시 읽었다. "지금은 단지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이고 싶다는 욕심을 하나 키울 뿐이다"이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자꾸 맴돈다. '사람냄새'라는 어휘에 이끌려 집어든 산문집이다. 같은 이유로 '사람냄새'라는 어휘를 화두삼고, 참으로 오랜만에 손가는대로 끄적여 본다
인도네시아의 과일 중에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다. 겉에는 투박하고 거친 가시가 빼곡히 나있다. 겉과는 달리 그 속을 까 보면 부드러운 크림과 같은 과육이 들어 있는 그런 과일이다. 한데, 그 향기를 처음 맡는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기겁을 한다. 참으로 이상야롯한 더러운 향내가 나기 때문이다. 시체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변 냄새 같기도 하다. 그 맛 또한 그 향내 값을 톡톡히 하는 그런 과일이다. 그러나 이 두리안의 향기를 극복하고, 그 맛에 한번 길들여진 사람은 또 이구동성으로 과일 중의 왕이라고 격찬을 한다. 그만큼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중독성이 있는 게 이 과일의 특징이다. 그래서 이 과일에 대한 평가는 향기는 지옥, 맛은 천국이라는 독특한 품평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과일의 왕이라는 이 과일은 불행히도 그 독특한 향기 때문에 호텔에서는 절대 반입금지로 지명 수배된 과일이기도 하다.
두리안과는 전혀 다른 과일이 또 하나 있는데. 오래전 기억이라 명칭이 가물거리지만, 아마 원어민들이 부르기를 "낭까" 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한 이름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서 맛본 기억이 있는 이 과일은 잘 소개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큰 배추통만 한 이 과일은 겉모양은 두리안처럼 투박하고 못생겼다. 하지만 그 속을 갈라 보면 연 노란 크림빛이 나는 과육이 마치 순결한 꽃잎처럼 겹겹이 싸여있다. 향기는 두리안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 꽃잎 같은 과육을 하나씩 벗겨먹는 맛이 일품이다. 은은한 단맛과 함께 시원함으로 어우러지는 기분 좋은 독특한 향과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과일이다.
뜬금없이 과일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이 두 과일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기와 맛 때문이다. 외관상 한결같이 투박하고 못생긴 과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맛과 향은 그 어떤 과일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일단 맛을 본 사람은 공히 아예 중독되어버리거나 결코 쉽게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 과일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고유의 속성들은, 사람이 그 맛과 향을 일시적으로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그 고유의 독특한 맛과 향의 일관된 깊이와 여운은 인공적으로 결코 조작해 낼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향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풍겨내는 독특한 인간적인 냄새는 사람의 뇌리속에 깊은 향과 여운을 남긴다. 보통의 경우, 사람은 외양뿐만 아니라 숙달된 언어적 표현이나 기교, 또는 제스처로도 쉽게 자신을 꾸며내거나 포장할 수 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인의 말이나 글, 혹은 일상의 태도 행동 속에서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정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고유한 언어나 행동의 표출을 통해서 그 사람의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또는 욕구든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은연히 드러나는 어떤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만일 그것이 진솔한 것이지 못할 때, 거기에서 풍기는 냄새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일시적으로 그 향에 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닌 계산되고 포장된 것인 까닭이다. 아름답고 멋지고 화려한 껍데기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결국 그 표현된 실체와는 다른 무언가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특히 사람 냄새에 민감하다. 단지 그 표현을 잘 안 할 뿐이다. 때론 알면서도 '모른 척' 하기도 한다. 때론 '그러려니'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람다운 사람 냄새를 그리워한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서 포장되고 절제된 것 외에는 사람다운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를 일이다. 혹여나 자신이 무언가 일관성이 결여되고 진솔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나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기에, 그토록 사람다운 냄새가 나는 사람을 간절히 갈구하는가? 또 왜 그토록 자신이 사람다운 냄새에 대한 그런 욕심을 갖고 있을까라고 반문해 본다.
과연 나에게서는 어떤 사람의 냄새가 나고 있을까? 마침 장성숙의 수필에서 이러한 의문들에 어울릴 만한 글 하나가 찾아진다. "단지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이고 싶다는 욕심을 하나 키울 뿐이다." (200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