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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Dec 08. 2017

산문에 대하여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문, 수필, 에세이를 혼돈스러워한다. 나 역시 가끔 헷갈려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억 속에 고착된 오래된 경험과 낡은 지식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 상식을 다시 점검하고 헤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우선 사전을 찾아봤다. 


1. 산문(散文): ①[문학]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 ②소설, 수필, 논문, 서간, 일기, 희곡, 평론 등이 있다. 

2. 수필(隨筆): [문학]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 형식의 글. 

3. 에세이(essay):  '①[문학]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 따위를 생각나는 대로 쓰는 산문 형식의 짤막한 글 ②어떤 주제에 관한 다소 논리적이고 비평적인 글 ③또는 그러한 글투의 작품'이다.

4. 칼럼(column): ①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시사성이 있는 문제나 사회의 관심거리 등에 대해 평한 짧은 기사.

5. 논설(論說): ①신문, 잡지 등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한 견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글 ②어떤 주제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논거를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밝힘 ③또는 그러한 글이나 말.

6. 사설(社說): 신문, 잡지 등에서 펴낸이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다음 백과사전)


나름 정리해보면, 산문은 자유롭게 쓴 글을 모두 포괄하는 문학 형태다. 소설도 산문에 속한다. '수필'은 인생과 자연 등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산문'이다. 동양에서는 수필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송의 용재 수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고대 이전부터 다양한 산문 형태로 존재해 왔다. 


수필은 대략 두 가지 형태로 나눠진다. 몽테뉴 형 수필 즉 경수필(miscellany)과 베이컨형 수필인 중수필(essay)이다. 경수필(miscellany)은 신변잡기나 개인적인 취향, 경험, 생각 등등을 자유롭게 진술하여 글쓴이가 주체로써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 경수필(miscellany)이다. 반면에 중수필(essay)은 글쓴이가 주체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주제, 의견, 비평, 논증 등이 구체적이고 뚜렷하다. 문자 그대로 경수필은 가볍고 중수필은 무겁다. 이점에서 경수필과 중수필의 독자층이 확연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또 흔히 에세이(중수필)와 혼동하는 칼럼은 글쓴이가 대중에게 자기 의견, 생각, 평가,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논한 짧은 글로 그 목적이 뚜렷하다. 그 대상이 대중이고, 그 내용은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글쓴이의 교양과 지식, 경험이 중요시된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냉정하고 올바른 안목 또한 마땅히 전제된다. 한편으로 칼럼은, 주장하고 설득하는 논리 일변도의 딱딱한 논설 또는 신문 사설과는 다르다. 논리와 형식에서 자유롭다. 이점에서 포괄적 의미의 산문, 좁은 의미에서의 수필과 닮은 듯하다. 하지만 주제와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비문학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된다. 요즘엔 칼럼도 에세이처럼, 심한 경우 소설처럼 쓰는 이들도 가끔 보인다. 소설이라 함은 사실이 아닌 허구에 사적인 감상과 감정까지 개입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단견(短見)에 따르면, 인문학으로 덧칠하여 감성팔이 장사를 하는, 소위 글쟁이들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종이우산과 같은 쓰레기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흔히 보는 잡글, 즉 경험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글들은 경수필에 해당한다. 일기나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여 소개하는 글도 경수필에 해당한다. 일기(日記)는 '날마다 자신이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등을 사실대로 적은 개인의 기록'이다. 사회생활에서 흔히 요구되는 자기소개서(自己紹介書)는 '자기를 남에게 알리기 위해 쓴 글'이다. 이 둘의 성격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분명하게 구별된다. 전자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의 차원이고, 후자는 자기광고의 차원으로 설명문에 가깝다. 둘 다 목적만 다를 뿐 자기만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보호해야 할 자기만의 프라이버시를 공개할 경우, 자칫하면 예상치 못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스스로 공개한다는 것은, 그 예상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감수할 만큼 무언가 바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와는 달리 자기소개의 글은 그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수필이 되기도 하고 자기를 설명하는 논술, 즉 비문학적인 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경험 그리고 신변잡기적인 일상 생각마저 창작이 되는 듯한 추세다. 다시 말하면 경수필의 자기소개적인 창작화이다. 공개적인 일기도 그렇고 자기소개서도 그렇다. 왜냐하면 사방을 둘러봐도 그 내용들이 틀에 박힌 듯 천편일률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설은 실제처럼 가상하고 글로 그리는 허구다. 하지만 산문(수필)은 다르다. 일상의 자기 삶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이 수필이든 논술이든 자기를 그려내는 데에 자기 아닌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은, 마치 호박을 색칠하여 수박이라 우기는 격이요, 매끈한 강돌에 무늬를 그려 넣고는 수석(壽石)이라 생각해 달라는 격이요, 까마귀가 그 색칠한 깃털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뽐내고자 하는 격이다. 


추함과 아름다움, 좋음과 싫음의 기준은 개인이 가진 가치관의 잣대, 인식의 틀에 좌우된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세상 만물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보고 어떻게 찾아내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가진 마음의 눈에 달려있다. 그 마음의 눈이 무언가 외적인 것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면, 무언가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왜곡되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겠다.


경수필이 일상적인 경험에서 나온 개인의 감상(感想) 또는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보편성을 가질 이유는 없다. 개인이 경험을 통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굳이 남에게 인정받고 공감받아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없다. 경험과 감정을 꾸며내고 흉내 내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와 구성과 거기에 어울리는 서술적인 특징을 의미하는 문체를 요하는 창작글은 다르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소설과 같은 창작글이 그렇다. 창작글이란 허구를 사실처럼 혹은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허구와 거짓말은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당연히 창작에는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이 따르기 마련이다. 


수필과 달리 달리 창작글인 소설은 마음먹는다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나 쓸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작가, 소설가는 참 대단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다. 하여튼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높이고,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쓰는 모든 형태의 수필은 자전적이 아닌, 자기소개서적인 소설과 가깝다. 그래서 당연히 어렵다. 일기든 자기소개서이든 창작을 하려니 손댈 엄두를 못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산문은,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마음이 진정으로 동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마치 일기나 낙서를 끄적이듯, 타인을 의식하거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좋은 수필이란 관찰과 경험이 마음과 생각을 거쳐서, 자기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우러나오는 소리에 의해 결정된다. 소리는 공명에 의하여 나온다. 따라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없고, 속에 든 것 또한 없으면 나오는 것 또한 당연히 없게 마련이다. 글은 아무리 꾸민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이 은연중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패턴의 문제고 일관성의 문제다. 솥단지를 만드는 거푸집에서 종(鐘)이 나올리는 만무하다.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만 아는 목적이 반드시 있게 나름이다. 어째튼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은밀한 일기(日記)를 제외하고, 어떤 사람의 글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마치 카멜레온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면, 그 글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 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간에, 창작의 고통이 여실히 엿보이는 자전적 소설이다. 


고루한 결론이지만, 글은 매일 정해진 식사를 하듯이 습관처럼 많이 읽고, 많이 의문을 가지고, 많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면 자연히 늘게 되어 있다.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으면 비록 재미가 없어도, 난해하지 않아 납득이 용이하고 생각게 하는 논리적인 글과 책을 많이 읽으면 된다. 따라서 글에 담긴 생각과 철학과 신념이 뚜렷하고, 저자의 삶과 괴리가 없어 많은 이들에게서 검증이 된 좋은 책들을 골라서 읽을 필요가 있다. 고전(古典)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이외에 자기의 일상을 사실 그대로 정리하고 은밀하게 헤아리는 일기(日記)는 기본이다. 


여담으로 보통 분노나 증오, 슬픔, 등등의 감정이 치솟아 오를 때, 흔히들 그 표면적인 감정에 쉽게 휩싸여 버린다. 그럴 때 심리 치유자들은 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가능하면 토해내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고 감정보다는 그 감정의 이면을 살펴보라고 또 조언한다. 문제의 진짜 본질은 그 감정의 이면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자기를 객관화하여 살피고 헤아려 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헤아리는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글은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이는 효과가 있다'라고 분명히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다만 자신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인정받기 위한 자기소개서적인 창작글로 자기치유와 정신적 성장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을 쓰는 목적과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요 백인백색의 자유의지에 속한 거라 뭐라 딱히 토달 것은 못된다. 여하튼 타인을 의식하거나 외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산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자기를 헤아리고 미루어 알게 하는 좋은 도구요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201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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