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x and the Grapes (여우와 포도)』
A FAMISHED FOX saw some clusters of ripe black grapes hanging from a trellised vine. She resorted to all her tricks to get at them, but wearied herself in vain, for she could not reach them. At last she turned away, hiding her disappointment and saying: 'The Grapes are sour, and not ripe as I thought.' (George Fyler Townsend's translation of the fables, first published in 1867)"굶주린 여우가,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포도나무를 보았다. 굶주린 여우는 갖은 수단을 다해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시도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포도송이는 여우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은 시렁 위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우는 허탈한 실망감을 감추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저 포도는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익지 않은 시어 빠진 신포도야."
◀ 삽화 이미지: illustrations by Harrison Weir(Aesop's Fables, by George Fyler Townsend,1867)
위의 이야기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다. 어느 날, 굶주리고 배고픈 여우가 잘 익은 포도송이를 발견하고 허기를 채우려고 했다,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시도하고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포도를 따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우는 포도 따먹기를 포기하면서, '덜 익은 신포도일 거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단념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던져주는 교훈적 메시지는 각자가 가진 인생관이나 삶의 가치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피드백될 수 있다. 어떤 이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문제 해결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어떤 이는 자기능력 이외의 것을 넘보지 말라라는 자기 분수 등등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이야기의 중심에 굶주려 배고픈 여우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탐스럽게 익은 달콤한 포도를 먹을 수가 없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포도송이 밑의 여우가 제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굶주려 허기진 상황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여우는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배고픈 여우의 모습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의 삶을 생각해 본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처럼, 완전하게 행복한 인생은 없고 또 완전하게 불행한 삶 또한 없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날, 기쁜 날, 행복한 날이 있고, 불행하고 슬픈 날도 있으며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는 날도 있다. 또 좋은 일이 계속되어 행복한 날들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나쁜 일이 쓰나미처럼 연이어 밀려오기도 한다. 또 영원히 불행하고 힘든 날만 계속하지는 않는다. 행복과 불행이 마치 꼬인 실타래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일상의 삶에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꿈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반드시 다 이뤄진다는 말은 현실적인 경험으로 보면 사실일 수도 있다. 또 거짓이나 환상일 수도 있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처럼, 상황과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에는 분명히 존재하기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질적 문제나 본래적인 능력 혹은 사회 시스템과 같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우가 처음 목표한 대로 맛있는 포도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포도에 닿을 수 있도록 스스로 여우의 키를 높이 키우거나, 혹은 여우가 작대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굶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포도송이가 절로 포도가지에서 떨어지기를 무한정 기다리거나, 또는 포도나무덩굴을 힘으로 꺾거나 칼로 베어서 포도송이가 땅에 닿도록 하는 방법 등등 여러 가지가 잇겠지만, 불행하게도 여우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이 인간과 같은, 종(種)이 다른 누군가와 협업하지 않는 이상, 여우 스스로는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합리화라도 하지 않는 건 행복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노력도 하지 않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노력만큼은 비록 그 결과가 실패가 될지라도, 그 노력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인생의 고귀한 자산으로 남아 인생을 좀 더 풍요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핵심은 숱한 노력 끝에 깨닫게 되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절망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추스를 것이냐에 달려있다.
이 이야기에서 여우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심리학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포도를 따먹어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노력했지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니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가 된다. 여우는 분명히 저 잘 익은 포도의 달콤한 맛을 안다. 그렇다면 좌절과 스트레스는 배가(倍加)된다. 스트레스는 바라는 욕구는 있으나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종종 나타난다.
이러한 좌절에 의해 야기되는 심리적 스트레스에 여우는 독특하게 대처한다. 즉, 포기하고 단념하되, 합리적이고 적절한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둑인다. 그리하여 그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을 도피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가 선택한 것에서 직면하게 되는 불합리와 부조리, 즉 인지부조화를 어떻게 스스로 최소화시키는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되기도 한다. 여우는 자기가 간절히 바람에도 결국 갖지 못한 것을 오히려 경멸하는 방식을 취한다. 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방식대로 그 부조리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패턴은 ‘좋을 대로 적응하기(adaptive preference form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Jon Elster, 198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여우의 처량하고 불행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물론 굶주린 여우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가능한 방법은 굳이 포도송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여기에 우리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여우와 신포도의 이야기에서 때론 화도 나고 때론 무력감과 함께 절망으로 다가오는 슬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때론 우리네 개인적 삶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이러한 것들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로 설명한다. 그래서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방어기제 중의 하나인 합리화(Rationalization)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화로 사용된다. 즉, 실망과 좌절이 주는 스트레스 상황 혹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럴듯한 구실을 붙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처 입은 자아에게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자기기만'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에 대한 정의는, '스트레스 및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의 내면(자아)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속이면서 대체하는 양식'을 가리킨다. 프로이트는 방어기제가 정신 구조의 내적 갈등이나 외부 환경의 요구와 자아가 갈등에 직면하여 불안이 일어날 때, 자아가 불안을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개인을 보호해 주는 심리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Freud, 1926)에 의하면, '방어(defense)란 정신 내적 갈등이나 외적인 환경적 요구와의 갈등에 직면하여 불안이 일어날 때, 그러한 불안을 다루기 위해 자아가 동원하는 갖가지 정신적 대처를 말하며 이러한 정신적 대처인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는 개인을 불안으로부터 보호하고, 내적인 또는 외적인 위험이나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자동적인 심리과정으로, 자동적이고 미분화된 반응을 통하여 고통스러운 감정과 갈등을 줄이려는 무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왜곡인 것이다'.
정신분석 용어사전에는 방어를 “위험들과 그에 수반되는 불쾌한 정동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자아의 분투”(조성호, 2001)로 정의되고 있다. 또한 방어기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본능, 양심 그리고 외부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아가 사용하는 무의식적 기제 일 뿐 만 아니라 그러한 목적을 지닌 의식적 무의식적 행동까지도 포함된다'(김유심, 2004)고 하였다. 다시 말해, '개인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부딪치는 갈등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의식적, 무의식적 수준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한 개인의 사고, 정서, 행동 및 태도를 말한다. 불안이나 갈등 상황이 일어나면 방어기제는 내면의 자아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동시에 개인의 적응을 돕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방어기제는 위험이 분명치 않은 불안 상황이나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 등 자아를 위협하는 정신적, 감정적 위험을 감지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즉 그러한 상황에서 이성적 혹은 합리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아를 붕괴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사고 및 행동 수단이 방어기제다. 정리하면, 방어기제는 육체와는 달리 상처받기 쉬운 정신적인 내면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아주 정교한 인간 내면의 심리적 장치다. 그 메커니즘은 매우 정교하고 탁월한 것으로 적절하게 발동한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Kolb(1982)는 '삶의 다양한 자극들로부터 느끼는 성적 충동, 공격적 충동, 적개심, 원한, 실망과 좌절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내적 긴장과 불안이 유발될 때 이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학적인 책략이 자아 방어기제이다. 따라서 환자는 물론 정상인에게 있어서도 심리적 안녕과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아 방어기제의 사용이 필요하다'라고 보았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방어기제가 과도하게, 즉 사실 왜곡의 정도가 심하고 일상생활에서 무분별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혹은 충동적으로 나타나 스트레스와 내적 갈등의 단초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면 정신적,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자아가 성숙할수록 방어기제도 성숙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Vaillant(1971)는 방어기제를 그 성숙도에 따라 방어기제를 4가지 수준으로 구분하였는데, 즉 정신병적 수준, 미성숙한 수준, 신경증적 수준, 성숙한 수준으로 구분하였다. 합리화는 신경증적 수준에 속한다.
요점은 자아를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인 합리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 자신이나 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적절한 자기합리화,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자세, 그래서 필요하다면 문제 중심적 대처, 즉 심리적 도피가 아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러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 나가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의 행복은 의외로 먼 곳이나 특별한 것에 있지 않다. 마르쿠제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말하기를, "순간적인 행복, 지복의 한 조각으로 충분한 것이다. 인간은 보다 겸손해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항상 문제는 현재 누리고 있지만 사소하게 보이는 것,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닿기 힘든 아득히 먼 곳이나 누군가 혹은 스스로 규정해 놓은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찾는 것, 등등 현실 속의 자신은 불행함에도 스스로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숨어 있다.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서가는 여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모습에서 슬프게도 나를 본다. 때때로 무력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적 상황 앞에 여우처럼 서있는 나를 말이다.(201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