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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Feb 10. 2022

본색

'문장(文章)'이란 사람의 말 가운데에서도 정련(精鍊)되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꼭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을 행한 실상을 모두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웅(揚雄), 그리고 당(唐)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나 송(宋)나라의 왕안석(王安石) 같은 무리들이 그들의 말을 문장으로 펼쳐 놓은 것을 보면 뭐라고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일을 행한 실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내가 참견하며 입을 놀리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백정의 집에서 부처에게 절을 하고 창녀의 집에서 예절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겉에서 얼핏 보면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막상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백정이요 창녀임이 분명하니, 어떻게 그 본색을 숨길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의 시(詩)를 낭송하고 그 글(書)을 읽을 적에는, 그 사람이 당세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더욱 따지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말하면 학문이 깊지 못하니, 어떻게 감히 옛사람을 논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감히 천하의 재사(才士)들을 논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내가 한갓 문장(文章)만을 가지고서 그 사람(사람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만은 감히 숨기지 못하겠다. -이색(李穡, 1328~1396, '동안거사 이공문집 서문(動安居士李公文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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