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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Feb 13. 2022

독서(毒書)

문장을 잘 짓는 것은 작은 재주에 불과하지만, 문장은 사람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가장 정제된 사고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옛사람들 가운데 이 일에 뜻을 두었던 이들의 문장이 그 수준을 따져 보면 얕거나 깊고, 높거나 낮아서 진실로 각각 다르다. 하지만, 모두들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하며 집중하는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지 거친 주먹을 휘두르고 큰 발길질을 하듯이, 또는 단계를 뛰어넘고 차례를 무시한 채, 단번에 뛰어올라 그러한 경지에 올라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많은 책을 빨리빨리 읽으려고만 하고, 평범한 내용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만 좋아하며, 읽던 책도 다 독파하지 못하였는데 또 다른 책을 읽으려 들고, 겨우 반쯤 읽었을 뿐인데 서둘러 끝을 찾아서 남들에게 한바탕 좋은 얘깃거리를 늘어놓으려고 힘쓴다면, 비록 만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남들에게 자랑거리야 되겠지만 털끝만큼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러한 태도로 허황되고 교만한 기운을 키우고 오만하고 나태한 성품을 더한다면, 거기에서 발생하는 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송상기(宋相琦, 1657~1723),  '이랑 하곤에게 주는 서문(贈李郞 夏坤 序)', 옥오재집(玉吾齋集) 제13권/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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