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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Mar 07. 2024

금수(禽獸)

금수(禽獸, 짐승)도 제각각 따뜻하고 배부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그들이 사는 목적이 따뜻하고 배부른 데에 그치기 때문에 그저 금수(禽獸)인 것이다. 사람이 만일 단지 따뜻하고 배부름만을 마음에 두면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재능이 없고 거기에 사람다움의 덕성마저 없다면 이 또한 금수(禽獸)일 뿐이다. 따뜻하고 배부르고자 하는 욕구을 충족시키려는 자는 임금의 자리를 도둑질하고, 임금의 녹봉을 훔친 뒤에야 자기가 먹고 입는 음식과 옷을 사치스럽게 하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따뜻함도 만족되고 배부름도 극에 이른 뒤에는 역시 금수(禽獸)로 죽는 것이다. 저 불초한 자들은 지혜롭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으면서, 한번 배부를 욕심에 오로지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한번 따뜻할 욕심에 오로지 비단옷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임금의 밥을 훔치고 임금의 관직을 병들게 한다. 화살 같은 세월이 홀연히 지나가 영원히 잠들어 저세상으로 가면 냄새나는 몸뚱이와 더러운 뼈에 천 사람이 코를 막고, 그의 흉한 이름과  그의 에 아로새겨진 간교한 이야기는 만고토록 세상에 회자되며 사람들의 귀에 가득할 것이다. 금 같은 성채와 보배 같은 누각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멀리 떨어져 황폐해진 무덤은 지나는 사람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이니, 그 어찌 영원토록 처량하게 눈물 흘리며 사무치게 후회하는 혼백의 신세가 아니라 하겠는가?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사물(事物)' 부분, 존재집(存齋集) 제12권/ 잡저(雜著) /격물설(格物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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