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격물치지

사람의 진면목은 언제 드러나는가

by 파르헤시아


살다보면 간혹 관심이 가는 사람이 주변에 생긴다. 이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등등 이왕이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첫인상, 외모, 능숙하거나 점잖거나 상냥하거나 재치있는 말솜씨, 매너있고 친절한 태도만으로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 "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판단하거나 심지어 이를 토대로 "그 사람을 잘 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의 결과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의외로 하나의 사실로 수렴한다. 즉 사람의 진면목은 말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드러나는 행동의 패턴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장맛은 오래 익혀봐야 참맛을 알 수 있다"라는 옛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장맛처럼 사람의 참맛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과연 어떠한 행동들 속에서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가? 심리학 및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일치하는, 대표적인 몇 가지를 간추려 보겠다.


1. 상황이 바뀌었을 때(일관성의 여부)


오랫동안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과 “성격은 안정적이다”라는 주장이 대립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 둘을 통합한다. 즉 심리학은 성격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핵심 특성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본다. 다시말해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지만, 같은 유형의 상황에서는 반복되는 선택적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수천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간파하였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을 가리켜, " 덕이란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가 굳어진 습관(hexis)"이라고 통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선한 사람은 특별한 순간에 선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늘 비슷한 선택을 하는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공자 역시 비슷한 통찰을 하였다.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는 ‘군자가 인(仁)을 떠난다면 어찌 군자로서 이름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을 때에도 인(仁)을 어기지 않으며, 다급한 순간에도 반드시 이를 지키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이를 지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군자는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할지라도 사람다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성실성, 친화성, 정직성과 같은 핵심적인 성격 특성은 수년에 걸쳐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 권력 차이가 있을 때나 없을 때 비슷한 기준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예측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신뢰의 핵심 조건이 된다. 신뢰란 결국 “앞으로도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예측가능한 기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때만 친절한 사람, 강자 앞에서는 공손하지만 약자에게는 무례한 사람은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사람은 어느날 권력이 주어지면 얼굴과 언행과 태도가 확 바뀌며 이른바 완장질을 할 가능성이 크다. '완장질'이란 주어진 권한을 원래의 목적 이상으로 남용하는 행위, 공식적으로 부여받지 않은 권한을 비공식적으로 행사하려 시도하는 행위, 제대로 된 기준이나 명분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행위 등을 일컫는 속어다.


공자는 이런 인물을 소인(小人)이라 불렀다. 소인은 악을 저지르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기준이 늘 외부에 있다. 이익이 있으면 웃고, 손해가 예상되면 등을 돌린다. 그래서 소인은 상황에 따라 얼굴이 바뀌고, 관계 속에서 예측 가능성이 낮다.


반대로, 상사·동료·후배·친구·이웃·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고 유리한 상황과 불리한 상황, 또는 권력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행동 기준이 유지되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신뢰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단발적 성격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 패턴에서 확인된다.


2. 압박(스트레스)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그 사람의 사회적 가면을 벗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자기조절 자원이 줄어든다. 이때 사람은 ‘이상적인 나’가 아니라 평소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의(義)를 잃지 않는다”. 공자의 통찰이다. 즉 어려운 상황에서 밀려오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망가뜨리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지향하고 살아온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기조절 연구에 따르면, 압박 상황에서는 평소 내면화된 가치가 그대로 행동으로 드러난다. 평온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도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 시간 압박, 갈등 상황이 닥치면 사람의 자기조절 능력은 시험대에 오른다. 성실한 사람은 압박 속에서도 약속과 계획을 유지하려 하고, 친화적인 사람은 갈등 속에서도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는 선택을 피한다. 즉, 위기 속 행동은 새로운 성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우선순위를 노출시킨다. 그래서 “어려울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질문이 된다. 다시말해 사람의 진면목은 평온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감에 쫓길 때, 갈등이 생겼을 때, 위기의 순간에, 이익과 손해가 갈리는 순간에 또는 책임을 져야 할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다른 본성을 드러내는가? 변명부터 찾는가?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는가? 아니면 불리해도 책임을 인정하고 해결하려 하는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포장된 이미지보다 내면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위기 속 행동”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3.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대할 때(도덕성의 바로미터)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공통된 결론을 보여준다. 권력은 공감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타인의 감정을 자동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나 이익 여부와 상관없이 약자를 존중하는 사람은 외적 통제가 아니라 내적 가치에 의해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보상도, 평판도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친절은 전략이 아니라 성향에 가깝다. 이런 행동은 친사회적 성격과 도덕적 정체성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다.


즉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서 아무 이익이 없을 때도 이 사람은 같은 태도를 보이는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 사회적·경제적 약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혹은 다시 볼 필요 없는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는 그 사람의 도덕적 기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웨이터의 법칙(Waiter Rule)'이 있다. 이는 미국 방위사업체 레이시온(Raytheon)의 CEO 빌 스완스가 정리한 경영 규칙 중 하나로, 상대방의 진정한 인품을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아울러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이는 자신보다 약자나 서비스직 종사자(웨이터, 경비원, 청소원 등)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과 품성을 알 수 있다는 원칙이다. 자신에게 친절하지만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신뢰할 만큼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나 협력자에게도 무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과는 비즈니스 관계는 물론 인간관계조차도 맺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무례함은 언제가는 나에게로 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자가 말하는 도덕성의 바로미터는 인(仁)이라고 생각한다. 인(仁 어짐, 사람다움)이란 멀리 있는 고결함이 아니다. 눈앞의 사람을 이익의 도구나 목적인 아닌 사람 그자체로 인간답게 대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그 어떤 이익이나 감시도, 보상도 없을 때조차, 유지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전략이 아니라 덕(德)의 흔적이요, 좋은 인성(人性)을 가진 사람의 특성이다.


4. 말과 행동의 일치여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누구나 말과 행동이 어긋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불일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말과 행동이 충돌할 때 보통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행동을 고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화하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동을 수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작은 약속을 지키고, 실수를 인정하며, 말한 바에 맞추어 행동을 조정한다. 이런 반복이 쌓일수록 “이 사람의 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가 형성된다. 즉 신뢰는 합리화가 아닌 실수를 인정하고 그 불일치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축적된다.


옛글에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허물”이라고 했다. 말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말이 작은 행동으로라도 반복해서 실천되는가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가? 시간, 돈, 정보처럼 작은 신뢰 자원을 성실히 다루는가? 말과 행동이 어긋났을 때 합리화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하려 하는가? 신뢰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반복적인 노력과 작은 약속조차도 지키려는 태도에서 쌓인다.


시간은 가장 정직한 검증 도구다


초기 관계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좋게 보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자기제시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자기제시는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 진정성은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된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자기 이미지가 아니라 습관화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기적 패턴은 애착 유형과 정서조절 능력, 그리고 관계에 대한 성숙도를 예측한다. 그래서 신뢰는 단기간의 호감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하는 속성인 것이다.


다시말해 짧은 만남에서는 누구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기제시는 힘을 잃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만 남는다. 갈등 후에 관계를 회복하려는가? 실수 후 책임 인정 → 수정 → 복구의 과정을 밟는가? 존중과 성실이 일시적이 아닌 습관처럼 이어지는가?


결국 처음 보여주는 모습들이 장기적 패턴으로 일관되게 유지되는 사람이 곧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요,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가며


"군자(君子)는 의리에 밝고, 소인(小人)은 이익에 밝다”. 공자의 통찰이다. 이에 따르면, 군자와 소인(小人)의 차이는 도덕적 수사가 아니라 행동의 패턴에 있다. 군자는 압박 속에서도 기준을 유지하고, 이익이 없어도 예를 지킨다. 소인(小人)은 이익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상황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德)의 습관과도 맞닿아 있다. 덕(德)은 말의 선언이 아니라 실행의 반복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비슷한 선택을 반복한다. 일관성 있게, 압박 속에서도, 보상이 없어도, 시간이 지나도 그패턴은 한결 같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순간에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늘 비슷하게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결국 심리학이 말하는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그 디테일이 있다. 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이 일상에서 어떤 말, 어떤 행동,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아니라 일상속에서 어떤 선택을 얼마나 자주 반복하는지를 통해서 서서히 또는 부지불식간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경험도 명확하게 그렇다.


어째튼 사람을 단번에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자칫하면 후회가 뒤따라 온다. 아주 값비싼 댓가를 치루고 얻은 산 경험이기도 하다. 여러 상황에서, 여러 순간에 드러나는 패턴을 차분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사람의 진면목을 가장 확실하게 알아보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혹 좋은 사람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희망때문에 성급하게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주변에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좋은 사람과 인간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복이 아닐 수 없다.(2026. 1. 14)


<참고자료>

-McCrae, R. R., & Costa, P. T. (1994). 'The stability of personality.'

-Roberts, B. W. et al. (2006). 'Personality trait development.'

-Baumeister, R. F. et al. (1998). 'Ego depletion.'

-Tangney, J. P. et al. (2004). 'Self-control.'

-Keltner, D., Gruenfeld, D. H., & Anderson, C. (2003). 'Power, approach, and inhibition.'

-Batson, C. D. (2011). 'Altruism in humans.'

-Festinger, L. (1957).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Gneezy, U. (2005). 'Deception: The role of consequences.'

-Gottman, J. (1994). 'Why marriages succeed or fail.'

-Kernis, M. H. (2003). 'Optimal self-esteem and authenticit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 환각: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럴듯한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