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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an 26. 2018

전갈과 개구리

『사람은 두 종류야. 전갈과 개구리처럼.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지만 헤엄칠 줄 몰라 개구리를 찾아가 부탁했어. 개구리는 전갈이 찌를지 몰라 거절했어. 그러자 전갈은, 찌르면 둘 다 빠져 죽는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 했어. 개구리는 건네 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태웠어. 그러나 물결이 거칠어지자 겁이 난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 버렸어.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만 거야. 개구리는 화가 나서 물었어.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왜 찔렀냐고. 개구리랑 같이 죽어가면서 전갈은 슬프게 대답하는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게 내 천성이야."』


이 우화는  닐 조던(Neil Jordan) 감독의 영화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 1992)에 나온다. 보이 조지가 OST를 불렀다.  영화 크라잉 게임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 독립군(IRA)의 투쟁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후반부에서는 남성의 성적 정체성이 분명한 보통의 남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동성간의 사랑을 겹쳐서 이야기함으로써, 아무나 함부로 해석하거나 속단지을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우리네 삶 그리고 그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적 주체인 인간의 본성을 되짚게 한다. 위의 우화는 영화의 전반부에서,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게 인질 포로로 잡힌 영국군 흑인병사 조디가 자기를 감시하는 IRA의 일원인 퍼거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조디는 퍼거스가 천성적으로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이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반복된다. 어쩌다가 사랑을 하게 되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과감히 자신을 희생한 주인공 퍼거스에 의해 이야기가 되풀이된다. "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천성이거든". 퍼거스의 마지막 대사이자 영화의 엔딩이다.


우화의 원전은 이솝우화다. 오손 웰스의 영화 "미스터 아카딘(1955)"에서 먼저 인용되었다. 여기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라잉 게임의 우화와 약간 차이가 난다.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어서 개구리에게 자신을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개구리는 안된다고 말했다. "내가 만약 그대를 내 등에 업어 준다면, 그대의 침이 날 쏠 수도 있어요. 전갈의 침은 죽음이니까요.". 그러자 전갈이 되물었다. "자, 논리적으로 따져봅시다. 나는 언제나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죠. 만약 내가 당신에게 침을 쏜다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 당신의 죽음은 곧 내가 익사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내가 이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침을 쏜다는 게 논리적으로 가능할까요?" 이 말에 개구리는 확신했다.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넜다. 하지만 강 한가운데서 개구리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전갈이 그를 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어 가는 개구리가 울면서 말했다. "이게 논리적인가?  여기엔 논리라는 게 없는데..." 개구리와 함께 물속에 가라앉으며 전갈이 말했다.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이게 제 천성이니까요." 


이와 대비되는 다른 이야기가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선생의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휴머니스트, 2004)"에 나온다. 왕심재의 '추선부 - 미꾸라지에 대한 노래'다.  그 내용은 이렇다.


『도인이 어느 날 한가하게 시장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어느 가게의 한 통 속에 들어있는 뱀장어들을 보았다. 포개지고 뒤얽히고 짓눌려서 마치 숨이 끊어져 죽을 것 같았다. 이때 홀연히 그중에서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나타나서 상하 좌우 전후로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니 마치 신룡과 같아 보였다. 뱀장어들은 미꾸라지에 의해서 몸을 움직이고 기가 통하게 되었으며 생명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뱀장어의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기를 통하게 하여 뱀장어의 목숨을 건진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인 것이 틀림없으나 그 역시 미꾸라지의 즐거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코 뱀장어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뱀장어의 보은을 바라고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 '본성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미꾸라지의 왕성한 활동력이 죽어가는 뱀장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저 자신의 본성을 따랐을 뿐인데, 그것이 사방에 흘러넘쳐 다른 존재들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니...』


천성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행동이나 태도는, 위의 우화들처럼 논리로 이성적(理性的)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얽히고설키고 마는 것, 이 또한 천성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이다. 때로는 이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반복해서 비슷한 상황에 거듭 빠져버리곤 한다. 그런 나를 나 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이왕이면, 전갈보다는 개구리가, 개구리보다는 미꾸라지가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내 마음먹은 대로 안되니, 논리나 이성(理性)을 떠나서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딱히 없는 듯하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엮일 수밖에 없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때론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이해하고 또 나를 이해하는 방식을 두 우화를 통해 다시 배운다.  "어쩔 수 없어,......". 그것은 체념도 숙명도 아니다. 단지 나의 본성을 인정하는 일이며, 동시에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이다..(2018.1.26)

『어쨌든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의 본질은 아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어쩌면 사람들에 관해서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래, 그건 정말 복받은 거다.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14)

※사족: 2004년에 단상으로 썼던 묵은 글을 오늘 다시 끄집어내어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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