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
소설 베스트셀러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따끈따끈한 올해 신작이다. 표지부터 이목을 끄는 면이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와 최근에 읽은 브런치북 '어른여자생활'을 읽으며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여성의 삶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이들의 삶을 직접 찾아본 것인지, 아니면 최근의 트렌드에 자연스레 노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까지는 별로 접점이 없었던 타깃층이다.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는 번아웃으로 인해 회사와 남편을 등진 채 '휴남동'에 작은 서점을 낸 '영주'의 이야기이다. 영주는 점점 더 '휴남동서점'이란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따뜻한 인간애가 좋아서 또(?)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휴남동 서점'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장이 만들어진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혼경력, 취준포기자, 퇴사자 등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다 저마다의 행복을 찾기 위해 쉬어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굳이 특정 지어 문제 있는 자들로 낙인찍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사회로부터 소외되었고 지쳤다. 책에 나오는 직장인, 취준생, 퇴사자, 주부 누구 하나 특정 지을 것 없이 모두 상처를 지니고 있다. 책에서는 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임'이었다.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휴남동 서점'이고, '영주'는 그런 자신의 공간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동네에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는 동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어쩌면 '휴남동 서점'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 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영주'가 이야기하다시피 혼자서 서점을 영위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말을 반납하고, SNS 마케팅도 하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하며 손님들을 정성으로 반겨야 한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32p
'아름)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55p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 [파우스트]' 163p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 저자들이 하나같이 다 우물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는 걸. 방금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예전에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앞으로 또 우물에 빠지게 될 거라고."
"우물에 빠졌었고, 또 앞으로도 빠질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 거예요?"
민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음······ 간단해. 우리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거든. 나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 사람들도 다 힘드네? 내 고통은 지금 여기 그대로 있지만 어쩐지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른 우물에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없을 것 같다는 확신도 들어."' 193p
'"이 찻집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미래의 수많은 순간에 지금 이날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231p
'휴남동 서점'이란 공간을 통해 주변 인물들이 화합하고 소통하며 상처를 회복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구나를 새삼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동네에도 꼭 이런 서점(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직접 열면 좋겠지만, 영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정성으로 될 건 아닌 거 같다.
전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나는 커피도 별로 안 좋아하고, 영주와 승우의 로맨스도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젊었을 적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30대 후반 남녀의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영주는 사랑에 있어서 상처 많고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피곤한 타입이었고, 승우는 오직 진심 하나로 영주의 마음을 돌리려 하는 순정파였다.
서로 같이 있으면 웃는 순간들이 많다고는 묘사되지만, 개인적으로 이 둘의 조합은 결국 영주가 결정적인 순간에 밀어내거나 영주의 극심한 회피 성향에 지친 승우가 마음을 돌리는 식의 배드 엔딩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영주, 민준, 승우, 민철...
영주, 지미, 정서의 대화는 때론 너무 아줌마스러웠다. 지미는 민준을 붙잡고 30분 내리 남편 욕을 한다. 그런 소소한 대화에서 힐링을 받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썩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나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책이 유행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단 표지가 굉장히 이목을 끈다. 표지만 봐도 이미 어느 동네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며 이미 방문해본 적 있는 공간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힐링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는 단숨에 꽂힐만한 그림이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소설 TOP 2 '휴남동 서점'의 황보름 작가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애 작가의 공통점은 바로 이과 출신으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퇴사한 30대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자세한 신상까지는 알지 못하나 공교롭게도 둘 다 엔지니어 출신 작가라는 게 흥미롭다.
최근들어 30대 여성의 지갑이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일상에서의 '쉼'이 필요한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가 더 큰 시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지친 탓일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다 보니 책을 통해서라도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이러한 기조가 얼마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를 보면 당분간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순간의 힐링을 통해 지금을 버텨내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