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센트 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리뷰
나는 줄곧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이 고민은 아마 20살이 넘어가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업무가 반복 숙달이 된 이후부터 알바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고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 나의 청춘이 빨리 소모되길 바란다'가 되어 버리는 현실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활기 넘치고 젊은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인데,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다니...
이런 생각은 군대에 가서도 이어졌다. 허송세월이 너무 아깝다.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단 생각에 책을 미친 듯이 읽어댔다. 탄약고 근무에 들어갈 때도 건빵 주머니 안에 책 혹은 나의 필사 다이어리를 들고 갔다. (의무적으로는 그러면 안 됐지만, 하루에 2시간씩 2번 총 4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시는 영상 감시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과도기였는데, 현재는 탄약고 경계를 대부분 CCTV가 모션 감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역 후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경험치를 축적하고 싶었다. 대외활동을 하며 외국인들도 많이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더라도 다양한 업종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해야 시계를 습관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2~3번의 사업자등록증을 만들면서 귀여운 사이즈의 사업도 경험해 보고,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해보았던 나를 돌이켜 봤을 때, 내가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창의성'을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아야겠다. 윌리엄 더건의 '제7의 감각 : 전략적 직관'과 안성은의 'MIX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차별화'를 살펴보면 '창의성'이란 머릿속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재료들을 릴렉스 된 상태 혹은 자유를 느끼는 순간에(샤워, 달리기, 자기 전에 등등) 일순간 머릿속 재료들이 꽝! 하고 결합돼 MIX 된 결과물이다. 빌 게이츠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했었다. 창의적인 결과물들은 결국 '어떤 새로운 조합'이냐이다.
요약해 보자면 창의성에 필요한 것은 2가지이다. 재료와 환경.
나는 먼저 질 좋은 재료들을 쌓는 것이 미래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각 카테고리 별로 유명한 책들은 닥치는 대로 흡수했고, 다양한 인종과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팬데믹 이후로 이런 나의 '경험주의'는 큰 제동이 걸렸지만, 이때부터 실전에 들어갔다. 일순간 떠오른 '벙글이 마스크 스티커'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서울의 한 호텔에 납품하기도 했고, 마케팅 부서 인턴 시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내가 쓰고 있는 브런치의 큰 맥락도 클래식과 트렌드의 MIX이다(그리스로마신화 + MBTI, 자극적인 콘텐츠 + 책).
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협업해 결과물로 만들어 낼 때 몰입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신선하게 가꿔온 질 좋은 재료들을 마음껏 공급할 수 있고, 일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열심히 쓰다 보면 Z세대에게 '책 읽기'란 문 턱을 쉽게 넘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를 선택했다. 크게 보면 '마케팅', 조금 더 세분화해 보면 '브랜딩'을 하고 싶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것 봐라?' 하는 아이디어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 어쩌면 마케팅 업계에 뛰어들어 보니 안 맞는단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턴을 해보고 내가 직접 아이템을 만들어보았던 경험은 '마케팅'이란 직무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위에서 길게 얘기한 '마케터가 되고 싶은 나의 자아실현' 욕구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라!'란 명제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자아실현을 이루고 이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낙관을 품은 채 살아왔다.
하지만 칙센트 미하이는 이런 생각의 매몰되었을 때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나치의 아이히만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업무에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일에 몰입했지만, 도덕성이 결여돼 비극적인 참사를 가속화 시키는데 일조했다. 미하이는 각자 본인의 '자아실현'에만 포커스 두고, 자신에게 너무 빠져있다는 위험 신호가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고 말한다.
본인에게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남들과 어울려 사는 일에 극도로 무능해졌다. 그 결과 선진국 도시 인구의 절반은 혼자서 살고 있고 치솟은 이혼율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여론 조사를 통해 거듭 확인되는 또 하나의 징후는 사람들이 전에 없이 제도를 불신하고 그 제도를 이끄는 자들에 대해 공공연히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거북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모래더미에 푹 파묻고 자기만의 세계로 은둔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이미 갈파한 바 있고 최근까지 독재자 밑에서 모진 고생을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썩은 사회를 등지고 초연하게 혼자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자기 한 몸만 간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야 얼마나 편하겠는가. 불행하게도 세상은 사람을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우리가 속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는 바람직한 삶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애써 외면하지 않는 자세를 강조했다. 자기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어수선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엔 불가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갈음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질 줄 뻔히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느낀다..."
어느 히어로물에서나 나올법한 멋진 시나리오이다.
"성공을 쟁취하라!!"라는 자기 계발서 혹은 사회적인 목소리와는 배치되지만, 인간이 추구해야 될 방향을 일러주는 멋진 문구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더 이상 덮어놓고만 있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나도 더 이상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내 안에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길 가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를 발견하거나 주위에 힘든 사람이 보여도 애써 외면한다.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시간의 축복을 받은 성서에 적힌 내용들은 존중한다. 현대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도덕적 깨우침이 필요하다. 종교와 종교 권력은 다르다. 종교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때문에 종교 자체를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조금이나마 사랑을 실천해 보기 위해, 남들에게 도움이 되어 보고자 봉사를 다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비생산적인 일이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위해서. 죽어있는 나의 도덕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실천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스스로를 좀 더 예쁘게 봐주었음 하는 솔직한 마음도 있다."내가 별로인 모습들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선 그래도 괜찮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칙센트 미하이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의무감 때문에 혹은 단순히 시간을 태움으로써 얻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는 일들을 늘리라고 조언한다.
설사 원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퀘스트'를 만들어 원하는 것으로 만드는 자세도 필요로 한다. 이는 마치 '시지프스 신화'와 닮아있다. 시지프스는 신들에게 벌을 받아 평생 산 꼭대기 위로 돌덩이를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까뮈'는 말한다.
시지프스를 동정하지 말라고.
시지프스는 설사 신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받아 평생 돌을 산 꼭대기 위로 올려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지만, 그는 이것을 억지로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지프스는 돌을 올리는 행위에 '몰입'해 자유의지로 행하는 일로 만들었다.
니체는 말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은 확고하게 결정된 것을 자유 의지로,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할 때 가장 확실한 자유를 경험할 뿐 아니라 그것을 선용한다."
이들은 '자기 행동의 주인 의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만약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맡게 되더라도, 반복 작업과 같은 지루한 일들을 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일에 주인 의식을 갖는 것을 시도해 볼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특히나 자극적인 영상물과 콘텐츠에 길들여져 지루함을 가장 못 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격적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삶의 질을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서'란 누구나 원하는 이상향을 위해 이보다 좋은 실천적 태도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평생에 걸쳐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러다 보면 니체가 바랬던 것처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 질지 모르니까.